연오정과 석정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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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오정과 석정루
강옥엽 前 인천시사편찬위원회 전문위원
  • 기호일보
  • 승인 2020.06.12
  •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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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옥엽 前 인천시사편찬위원회 전문위원
강옥엽 前 인천시사편찬위원회 전문위원

최근 문화유산에 대한 정의나 범주가 확장되면서 각 지역에서는 과거의 유산만이 아니라 현재 가치 있는 자산을 미래문화유산으로 선정하고 있다. 시대적으로도 전근대 및 근대문화유산이 주된 대상이었다가 이제는 1960~70년대를 포함한 50여 년 전 현대의 생활문화유산이 수집과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초의 근대 공원인 자유공원에는 미래문화유산으로 지정돼야 할 우리 시대에 생성된 문화유산이 있으니 연오정(然吳亭)과 석정루(石汀樓)가 그것이다. 

공원을 찾았던 많은 사람들이 추억하듯이 연오정은 자유공원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 아래쪽에 세워진 것으로 송현동 거주 한의사 조길(趙吉)이 그의 부친 독립운동가 조훈(趙勳)의 뜻에 따라 1960년에 부친의 호를 따서 건립한 육각정자이다. 조훈은 함경남도 단천 출신으로 독립운동가였다. 이 정자의 현판은 좌수서(左手書)로 유명한 인천의 서예가 검여(劍如) 유희강(柳熙綱)의 글씨이다. 육각정자 지붕 안쪽으로는 연오정(然吳亭) 기(記) 현판 두 개가 걸려 있는데 하나는 1960년 광복절에 김정렬(金正烈) 시장이 작성한 내용으로 조훈 선생의 일생과 독립운동의 뜻을 기리는 것인데 현재 글이 마모돼 전체를 다 판독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한편, 석정루는 삼화조선을 경영했던 이후선(李厚善)이 시민의 휴식처가 될 누각을 지어 인천시에 기증한 것이다. 출생지가 월미도였던 연유로 월미도와 인천 앞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공원 서쪽 언덕 위에 2층 191㎡ 규모로 누각을 짓고 1966년 6월 23일 윤갑로(尹甲老) 시장 등 여러 내외빈이 참석해 준공식을 거행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누각명은 자신의 아호를 따 ‘석정(石汀)’이라 했는데 당대에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친 서예가 동정(東庭) 박세림(朴世霖)이 현판을, 제물포고등학교에서 유수한 평론가와 시인들을 길러낸 원정 최승렬(崔承烈)이 ‘기림’이라는 제목의 아름다운 제영(題詠)을 남겼으며 한샘 장인식(張仁植)이 현액을 썼다. 

인천 서곳 출신인 유희강은 인천시립박물관장, 인천시립도서관장, 한국서예가협회장 등을 두루 역임하고 이경성, 박세림, 장인식 등과 함께 대동서예연구회를 조직, 서화연구의 활성화를 기했던 서예가이다. 

특히, 뇌출혈로 인한 오른쪽 반신마비를 극복하고 왼손으로만 작품활동을 계속해 인간 승리의 극적인 일화를 남겼다. 동정 박세림 역시 유희강, 장인식과 함께 인천 서예진흥운동에 매진했으며 국전 초대작가와 심사위원 등을 역임하고 ‘동정서숙’을 개설해 후진양성에 힘썼던 인물이다.

김정렬 시장은 서울지방법원 인천지원 판사, 인천지원장을 역임했고 법관으로 재직 중 제2대 민선 인천시장에 당선됐으며(1954) 제3대 민선 인천시장에 국내 유일 무투표 당선 시장이 되기도 했다. 제7대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는데, 특히 문화와 체육진흥에 공헌한 것으로 평가된다. 작고 후(1974) 장례식은 향토사회장으로 치렀다. 윤갑로 시장은 경제개발에 매진하던 1965년 당시에 ‘시민의날’, ‘시민행진곡’, 시 ‘휘장(徽章)’, ‘시민 헌장’ 등을 마련하고 시사편찬위원회를 발족시켜 인천의 정체성 확립에 노력했던 인물이다.  

인천의 문화재 중에 정자나 누각이 지정된 사례는 강화도 연미정과 전등사 대조루가 있지만 모두 전근대 문화유산이다. 혹자는 흔히 접할 수 있는 팔각형, 육각형의 정자건축물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연오정과 석정루에는 인천을 대표하는 인물인 유희강, 박세림, 장인식, 최승렬 시인의 글과 그 역사적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또, 당시 김정렬, 윤갑로 등 인천시장의 행적도 기록으로 남아 있어 마치 야외에 세워진 전시관 역할을 하고 있다. 

130년 전 최초의 근대식 각국공원으로부터 일제강점기 서공원, 광복 후 만국공원, 그리고  자유공원으로의 변화와 그 역사적 사실들은 이제 1960년대 조성된 연오정, 석정루로 연결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문화재로 등재되지 못한 자유공원은 이제 미래문화유산으로 그 가치와 보존의 실마리를 풀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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