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냉전 시대의 생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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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냉전 시대의 생존법
김호림 칼럼니스트/전 인천대학교 겸임교수
  • 기호일보
  • 승인 2020.06.19
  •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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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림 칼럼니스트
김호림 칼럼니스트

마크 트웨인은 "젊은 시절의 삶을 피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비극이다"라고 했다. 그만큼 젊은 시절의 삶이 감당하기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더구나 미래의 불확실성이 불안과 절망으로 다가와 그들의 자아실현이 좌절될 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소설 「데미안」을 통해 고통스러웠던 사춘기 소년 에밀 싱클레어의 자기인식 과정을 정신분석기법으로 보여줬다. 그 첫째 관문이 불량 학생 프란츠 크로머와의 관계이다. 싱클레어는 크로머를 통해 온실 밖의 어두운 곳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는 크로머와 같은 부류에 인정받고 싶은 충동에서 동네 사과밭에서 사과를 훔쳐 땄다는 거짓말을 하게 된다.

크로머는 이를 미끼로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위협하며 거액의 돈을 요구한다. 그의 잔인함에 포획된 주인공은 결국, 아버지의 돈을 훔치게 되고, 누나까지 데려오라는 협박을 받는다. 이때 싱클레어 학교로 전학 온 데미안이 둘의 관계를 알고 해결해준다는 내용으로, 성장 과정이란 누구에게나 아프고 괴롭다는 것을 보편적으로 인식하게 만든 소설이다. 이러한 비극의 경험은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크게 보면 기업과 국가조직도 개인과 마찬가지로 성장기의 아픔과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최근 북한에서 연일 남쪽을 향해 최후통첩을 보내듯 가공할 언어폭력을 쏟아내다가, 급기야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로 긴장감을 높이는 것을 보며, 소설 「데미안」의 불량소년 프란츠 크로머가 싱클레어에게 가하는 협박 장면이 연상됐다. 그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단순히 대북 전단 살포가 문제가 아닐 것이다. 경제제재와 코로나 역병으로 체제 유지의 어려움에 봉착한 그들이 뭔가 돌파구를 찾기 위해, 국내외적으로 자기들의 확고한 의지와 존재감을 표출시킬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 분출은 아마도 우리 쪽에서 그들에게 약속한 것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강한 불만의 표현일 것이다. 그 약속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그들은 우리에게 민족 공조를 앞세우라고 압박을 하는 듯하다.

그러나 북한 비핵화 문제는 민족 공조의 틀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유엔안보리 결정에 따른 국제공조가 우선된다는 현실을 모두 수용해야 한다. 그리고 설령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친다 해도 우리의 의지대로 초강대국인 주변국의 힘을 꺾을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또한, 북한을 도덕적으로 설득할 수 있다는 지난 정부의 햇볕정책과 동북아 균형자론도 실패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는 비핵화 의지가 없는 북한 권력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하고 싶지 않은 결과이다. 더욱이 미국과 중국 간 신냉전(新冷戰)이 시작된 시대에 북한의 비핵화 문제는 독립 변수가 아니라 미·중 전쟁의 종속변수가 됐다는 사실을 수긍하면, 민족공조란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개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새로운 냉전 관계에서 중국은 감히 북한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세계, 특히 아시아는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MAGA, Make America Great Again)가 충돌하는 패권 결전장이 됐다. 무역전쟁으로 시작된 양국 관계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날로 악화돼, 어정쩡하게 휴전이란 이름으로 봉합될 수 없을 것이며, 오히려 열전으로 확대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이러할 때 중국과 국경을 맞대는 접경 국가와 아시아 주변국들의 근심이 깊어지게 된다. 국가안보와 경제적 이익 중에서 어느 하나의 선택을 강요당하는 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 운명이 결정될 수 있는 중차대한 문제이다.

그리하여 아시아 주변국들은 한 국가와의 유대강화가 곧 다른 국가와의 관계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미·중 양 국가에 이해시키려 노력할 것이며, 할 수만 있으면 강요된 선택을 피하려 할 것이다. 이에 중국은 미국의 동맹국들로 하여금 반중국 연대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유인책을 제시할 것이며, 미국 또한, 이 지역에 새로운 ‘경제번영 네트워크’를 구축해 중국을 포위·견제할 것이다. 이런 일련의 불안한 움직임을 보면, 1988년 등소평이 인도의 라지브 간디 수상과 면담에서, 21세기가 아시아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예측에 대해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 그의 선견지명은 현실로 입증되고 있는 듯하다.

아시아 주변 국가들이 미·중 간의 갈등에서 강요된 선택을 피하지 못했을 때, 그들은 정치·군사력, 경제력과 그들이 가진 인류 보편가치와 이념의 측면에서 누가 더 나은 패권국이 될 수 있는지를 고려할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종속변수인 북한의 비핵화 문제 해결도 추가적인 고려 대상이 된다. 이 선택에는 정권의 이념보다 국가의 운명이 우선돼야 한다. 정권은 유한하고 국가는 영원하기 때문이다. 헤세 소설의 주인공이 그러했듯이, 이 나라도 고통스러운 성장 과정의 위기를 이겨내어,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를 누리는 강한 나라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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