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이른 무더위와 함께 공포영화가 돌아왔다. 코로나19로 침체된 극장가는 한국산 좀비 영화 ‘#살아있다’가 예매율 50%를 돌파해 재기의 청신호를 켰다. 갑작스레 좀비가 된 사람들과 통제 불능에 빠진 도시, 고립된 남녀의 생존기를 그린 영화 ‘#살아있다’가 관객이 급감한 영화계의 구원투수가 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K-좀비의 흥행 파워는 2016년 1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부산행’을 시작으로 넥플릭스 드라마 ‘킹덤’에 이르기까지 대중의 큰 사랑으로 입증됐다. 

좀비란 서인도제도 아이티 섬의 부두교 의식에서 유래된 것으로, 살아있는 시신을 이르는 말이다. 실제로는 죽었지만 주술로 살아난 상태이기 때문에 주술사의 지배를 받는 무의식 상태의 인간이라 하겠다.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좀비는 이와는 다르다. 핏기 없는 얼굴로 흐느적거리며 걷다가 산 사람의 냄새를 맡으면 섬뜩하게 물어뜯는 괴수에 가깝다. 이런 형태의 좀비는 1968년 조지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시작됐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는 1943년 작품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흡혈 괴물 좀비와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공포 장르임에도 우아하고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좀비영화를 만나 보자.

캐나다 출신의 간호사 벳시는 부푼 꿈을 안고 첫 발령지인 서인도제도로 향한다. 사탕수수 농장을 운영하는 부유한 홀랜드 씨의 아내 제시카를 돌보는 일이 벳시의 업무였다. 제시카는 심한 열병을 앓은 후 식물인간과 다름없는 상태가 됐다. 다행이라면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뿐이었지만 그 행동은 몽유병자처럼 의식 없는 발걸음에 불과했다. 그런 아내 곁을 지키는 홀랜드 씨의 우수에 찬 모습은 벳시를 흔들었다. 벳시는 홀란드의 행복을 위해 아내 제시카를 살려내고자 노력하지만 의학적인 방법으로는 차도가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벳시는 마을의 종교인 부두교의 주술적인 힘을 빌리려 한다.

영화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는 소설 「제인 에어」에 좀비물을 결합한 독특한 작품이다. 젊은 여성이 비정상적인 아내를 둔 신사의 집에 고용돼 그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서인도제도의 습한 공기, 부두교의 주술과 만나 미스터리하게 펼쳐진다. 이 작품 속 좀비는 영혼이 사라진 아내의 모습으로 형상화됐다. 피에 굶주린 괴수의 모습은 아니기에 현대 좀비와는 공포를 전하는 결이 다르다. 끔찍한 모습과 놀람으로 무서움을 전하는 것이 아닌 영화 전반에 스며든 음산한 기운과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느낌을 통해 관객을 심리적 공포로 몰아넣는다. 또한 상대방을 향한 헌신적인 사랑으로 서정적인 느낌과 애잔한 감정을 더한 이 작품은 독특한 분위기의 공포영화를 완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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