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블루의 백신, 관용과 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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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블루의 백신, 관용과 포용
남동걸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 기호일보
  • 승인 2020.06.24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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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걸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남동걸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경주 달 밝은 밤에/ 밤새도록 노닐다가//들어와 잠자리를 보니/다리가 넷이로구나.//둘은 내 것인데/둘은 누구의 것인가?//원래는 내 것이었지만/빼앗긴 것을 어찌하리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기이(紀異) 편의 ‘처용랑(處容郞) 망해사(望海寺)’조에 나오는 향가 처용가이다. 이 노래에는 배경 설화가 있다. 

"동해 용왕의 아들인 처용은 헌강왕을 따라 황성인 경주로 오게 되고, 왕의 배려로 미모의 여인을 아내로 맞아 살고 있었다. 하루는 처용이 달밤에 산책하러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혼자 자고 있어야 할 부인의 잠자리에 어떤 낯선 사내가 함께 있었다. 이 낯선 사내는 바로 전염병을 옮기는 역신(疫神)으로 처용 부인의 미모에 반해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아무도 없는 밤을 틈타 처용의 집으로 와 부인 몰래 그녀와 동침한 것이었다. 별안간 남편의 등장에 긴장하고 있었던 역신은 이내 처용의 너그러운 마음에 진심으로 감복하게 되었다. 그래서 처용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하며 앞으로는 처용의 얼굴 형상이 있는 곳에는 절대로 나타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물러갔다. 이때 이후 사람들에게는 처용의 얼굴 형상을 대문에 붙여서 전염병의 접근을 막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이 노래와 배경설화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지만, 표면적으로 봤을 때는 처용의 관용과 포용이 이 전염병을 굴복시킨 것으로 이해된다. 실제로 신라시대는 물론 고려, 조선시대까지 처용의 얼굴 형상을 대문에 붙여 전염병을 막으려 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전근대 시기 사람들은 위의 기록을 꽤나 신봉했던 듯하다. 전근대 시기까지 처용의 얼굴 형상은 전염병을 막는 백신과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이다. 요즘 들어 무기력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고들 한다. 이 무기력감은 몸의 피곤에서 발생하거나 마음의 피로에서 발생한다. 몸의 피곤에서 오는 무기력감은 그 피곤함을 풀어주면 쉽게 해소될 수 있으나, 마음의 피로에서 오는 무기력감은 쉽게 해소되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마음의 에너지가 떨어져서 오는 무기력감은 만사가 귀찮아지고 의욕이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마음의 피로에서 오는 무기력감은 심각한 사회현상을 수반할 수도 있다. 그간 사그라들던 ‘코로나19’가 최근 다시 창궐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전염병 소멸만을 기다리며 ‘사회적 거리 두기’, ‘생활 속 거리두기’ 등 자신의 일상을 희생하던 사람들은 또다시 시작되는 일상의 규제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다. 이런 정신적 피로감은 우울증을 동반한 무기력감을 수반하는 증상으로 나타나는데, 이런 현상을 ‘코로나 블루’라고 한다.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19’라는 말과 우울감이라는 의미의 ‘블루(blue)’가 합쳐진 말로, ‘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생활 위축 등 기존과는 다른 생활의 변화가 오면서 생긴 우울감과 무기력감을 뜻하는 신조어이다. ‘코로나 블루’는 쉽게 제압되지 않는 전염병 ‘코로나19’ 때문에 발생한 트라우마의 일종으로, ‘코로나19’가 육체적 면이 원인이라면, ‘코로나 블루’는 정신적인 면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육체적 질병인 ‘코로나19’는 비록 치료제가 없어도 완치율이 꽤 높은 편이다. 하지만 정신적인 피로에서 오는 ‘코로나 블루’는 치료가 마땅치가 않다. 

‘코로나 블루’ 증상은 대체로 "불안하다", "지겹고 답답하다"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증상들은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장기화되면서 일어나는 일상의 제약으로 인한 우울감과 무기력감이 스트레스로 발전해 생겨난다고 한다. 이런 스트레스는 규칙적인 생활과 적절한 운동으로 일정 부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육체적인 것만으로 이러한 증상을 온전히 예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인 예방책을 병행해야만 예방이 가능할 것이다. 

정신적인 예방책은 바로 마음가짐, 즉 관용과 포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벌어진, 그리고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사태를 인정하려는 너그러움이 바로 지금 필요한 때이다. 그 옛날 처용이 전염병에 대처했던 관용과 포용은 오늘날 전염병의 직접적인 백신이 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전염병의 창궐로 인해 일어나는 우울감으로 인해 벌어지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백신으로는 충분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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