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조작되는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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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조작되는 기억
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 기호일보
  • 승인 2020.06.25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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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과거에 대한 기억은 종종 착각으로 대체되거나 누군가의 조작으로 편향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간의 뇌는 과거의 기억을 온전하게 보존하는데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따라서 시각의 불완전성만큼이나 인간의 기억력도 신뢰하기 어려운 약점을 지닌다.

기억은 경험을 영원히 머리에 저장해 놓은 과거의 흔적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이 무언가를 기억해 내면 그 자취가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기억은 그렇다고 확신하는 것만큼 정확하거나 실재적이지 않을 수 있다. 가세하고 축적되는 경험에 따라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내용의 전모가 바뀌기도 하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변화 기조를 좀처럼 인식하지 못한다. 과거의 기억을 조작해서 현재의 진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하려고 시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컨대 기억은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재구성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재편집되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되풀이하면서 애초 사실에서 점점 멀어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기억은 당사자가 감지하지 못한 채 빈번하게 변질되고 외부의 의도적 개입으로 전혀 다른 양상을 띠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러한 픽션을 오류일지 모른다고 의심하지 않는다. 결국 인간은 기억을 잊어버릴 수도 있고 또는 그 기억의 빈 공간을 가공의 기억으로 채워 넣기도 한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완전히 새롭게 연출되고 기획된 기억을 토대로 실제로 발생하지도 않은 일들을 마치 직접 겪은 것처럼 여긴다.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조지오웰의 소설 「1984」는 진실과 허위에 대한 분별이 사라진 세상을 통제하기 위해 절대 권력이 어떻게 과거를 조작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진실부는 과거의 경제 수치나 날씨 같은 기록을 현재 상황에 맞춰 끊임없이 교정하는 기관이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이 기관에 근무하면서 예전 잡지들을 꺼내서 현재와 맞지 않는 과거 기록들을 고치는 일을 한다. 과거의 기록을 조작해서 현재 통계와 일치시키는 작업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올해 경제 성장률이 전반기에 3%가 될 것 같다고 했는데 실제로 2%밖에 되지 않으면 주인공은 아침에 출근해서 오늘 발표됐거나 발표될 통계의 과거 예측지를 찾아 지난 자료를 2%로 고치고 그 자료를 새로 발행해서 서가에 다시 꽂는 식의 일이 그것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가운데 사기범죄율이 1위인 사기공화국이기도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는 각종 조작 징후들이 짙게 드리우고 있다. 집권세력은 공수처 설치를 비롯해 외고·자사고·국제고 폐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장 파기, 탈원전 등을 밀어붙이면서 정권에 유리한 여론을 골라 이를 국민적 판단이라고 주장해 왔다. 또한 소득주도성장으로 오히려 소득 격차가 악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소득통계 작성 방식까지 바꿔버렸다. 통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마르크스 전공자로 통계청장을 바꾸더니 느닷없이 소득통계의 표본수, 조사방법, 응답 기간 등을 변경해 과거 소득과 비교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부적절한 정책으로 발생한 부작용을 통계로 조작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재조사, 고발, 역사 교과서, 지상파 TV를 통해서 위안부·강제징용 문제를 포함해 동학운동, 4·3과 여순사건, 5·18에 이르기까지 지난 사건들에 대한 집단적 기억을 바꾸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미 명확한 증거로 뇌물죄가 드러난, 성경과 백합을 손에 들었던 참여정부 시절 전 총리의 유죄 판결에 대한 뒤집기 시도도 마찬가지 행태에 다름 아니다. 

역사적 사건의 진실에 대한 법적·도덕적 판단은 다양한 증거와 명백한 근거를 토대로 규명돼야 한다.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그 결과에 맞는 사례를 찾는, 그것도 나올 때까지 찾겠다는 방식으로 제기되는 진실은 허구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21세기가 20년이나 지난 시절에 스탈린과 괴벨스의 검은 그림자가 대한민국 정치권에 어른거린다. 모든 사람을 얼마동안 속일 수 있고 몇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는 링컨의 말이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있음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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