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아이가 친구와 싸우고 울고 있습니다. 그때 엄마가 다가와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많이 아프겠구나!"라고 말하자, 아이는 더 서럽게 웁니다. 그러나 아이는 곧 진정되고, 엄마에 대한 깊은 애정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을 ‘공감’이라고 합니다. 공감은 좌절감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놀라운 힘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동행」이라는 책에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파데레프스키의 일화가 나옵니다. 상류층 관객을 대상으로 연주 일정이 잡히자 연습에 매진했습니다. 드디어 공연 첫날입니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그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엄마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어린 꼬마가 무대 위로 올라와 정신없이 돌아다녔습니다. 조용하던 객석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고 급기야는 "어서 끌어내려!"라는 고함도 들렸습니다. 

그때 파데레프스키가 무대로 등장했습니다. 모두 이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숨을 죽였습니다. 꼬마는 무대 위 피아노 앞에 태연히 앉아 ‘젓가락 행진곡’을 치고 있었습니다. 꼬마에게 다가가 옆에 앉더니 꼬마의 연주에 즉흥적으로 화음을 맞췄습니다. 그러면서 꼬마의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멈추지 말고 계속하렴. 옳지, 아주 잘 하는구나."

참 멋진 사람입니다. 저는 이 글을 접하면서 무대를 휘젓고 다닌 꼬마를 떠올렸습니다. 훗날 자신의 파트너가 되어준 그가 유명한 파데레프스키였다는 사실, 그리고 꾸짖는 대신에 ‘잘한다’라고 격려해준 것이 꼬마가 훌륭하게 클 수 있는 씨앗이 됐을 거라고 믿습니다.

‘공감’은 늘 감동을 줍니다. 공감을 때로는 동정심과 혼동하기도 합니다. 

정신과 의사 헬렌 리스는 이렇게 구분 짓습니다. "빗속에서 벌벌 떠는 사람을 보았을 때 그가 안쓰럽다고 느끼는 감정이 동정이라면, 공감은 함께 비를 맞고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좋은 생각」 2019년 6월호)

동정은 안쓰럽기는 해도 행동을 취하지는 않지만, 공감은 행동까지 이어지는 걸 말합니다. 이런 공감 사례가 같은 책에 ‘장수 의자’란 제목으로 소개돼 있습니다.

"경기도 남양주시 어느 횡단보도 앞에 장수 의자가 생겼다. 동네 파출소장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 노인의 무단 횡단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무단 횡단을 하는 노인들에게 이유를 물었을 때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다리가 아파서’라는 이야기를 듣고 만들었다." 

파출소장님의 공감 능력이 매우 돋보입니다. 법대로 하면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노인이 됐을 때를, 아니면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떠올렸을 겁니다. 그 결과가 의자였습니다. 

강자가 약자에 대해 보이는 공감이 보편화가 된 사회가 선진국입니다. 500여 년 전 유럽의 어느 전투에서 많은 부상자가 나왔습니다. 그 중에는 ‘시드니 경’이라 불리는 귀족이 있었습니다. 그는 허벅지에 총상을 입고 통증과 갈증으로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전투가 끝나자 한 병사가 물을 그에게 줬습니다. 방금 개울에서 떠온 물이었습니다. 

그가 마시려고 할 때 인기척을 느껴 돌아보니, 옆에서 죽어가는 병사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때 시드니 경이 병사에게, 그에게 물을 주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죽어가는 병사에게 말했습니다.

"이 물을 마시게. 자네가 나보다 더 목마를 테니까."(「마음을 움직이는 인성 이야기」)

이 사연이 전해지자 영국에서는 그를 애국심의 표상으로 삼고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기사’라고 칭송하고 있다고 합니다. 공감은 인격의 다른 얼굴입니다. 요즘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고통이 날로 깊어지고 있습니다. 더 가진 자들의 공감이 힘겨워하는 그들에게 아름다운 ‘물’ 한 잔이 돼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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