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대형사고가 1건 발생하기 전 그와 관련된 작은 사고 29건과 소소한 징후 300건이 존재한다는 ‘하인리히 법칙’이란 것이 있다. 이를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중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적용하면 발병 원인에서부터 사망자 통계, 미국과 갈등 속에 중국 당국이 취하고 있는 일련의 불투명성은 어쩌면 작은 사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고, 이대로 간다면 일대일로(一帶一路) 같은 부드러운 표현을 사용하면서 패권국의 야망을 담은 중국몽(中國夢)이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우선 세계 각국이 중국 내의 생산라인을 자국으로 회귀시키는 ‘리쇼어링(reshoring)’을 비롯해 향후 중국에 대한 투자를 대폭 줄인다면 침체의 늪에 빠진 중국 경제가 다시 힘을 얻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전략에 따른 중국 때리기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닐지 모른다. 미국 내 반중파가 중국의 무역 약탈과 안보 비리를 막을 전략 마련을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 역시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중국 정부와 우한시 등을 상대로 한 미국 주정부의 손해배상 소송도 마찬가지다. 

심각한 것은 독일을 필두로 하는 유럽연합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10년 전 유로존 경제 위기 이래 중국과 경제 관계를 돈독히 다져온 유럽의 태도는 결정타를 먹일 수도 있다. "중국 정부와 과학자들은 코로나19의 대인 감염 사실을 알면서도 세상에 알리지 않았다"면서 독일의 최대 일간지 ‘빌트’ 편집장이 시진핑 국가주석을 공개 비판했고, 메르켈 독일 총리도 이례적으로 중국의 투명성을 촉구하고 나섰는가 하면 영국 집권당 내에서는 중국과 외교 관계를 전면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공연히 나왔다. 더하여 중국이 국가적으로 공들여 온 아프리카에서도 중국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악화돼 심지어는 ‘중국 의료진이 아프리카인들을 대상으로 코로나 생체 실험을 할 것’이란 막연한 음모론이 마치 사실처럼 유포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의 대응은 오로지 ‘선전전’이다. 그들은 중국이 코로나바이러스의 진원지도 아니고 초기대응에 실패하지도 않았으며 서방의 비난은 ‘인종 차별’이라고 주장하며 미국에 마스크 24억 개를 지원했다. 오히려 중국이 피해자로 서방의 팬데믹을 막아줬다는 식의 주장만 한다.

이는 중국 체제의 한계일까, 아니면 시진핑 리더십의 본모습일까? 견해는 다양하지만 중국 내부는 사실상 심각한 빈부 격차와 도농 격차 등 내부적 불만이 팽배해 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2018년 기준 소득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0.4만 넘어도 심각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중국은 거의 0.5 수준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도농 격차는 40년 전 개혁·개방 때보다 더 벌어져 3배에 달한다. 덩치는 엄청나게 커졌으나 속 알맹이는 멍들고 있으며 사회적 논란이 될 만한 것들은 아예 덮어버리고 넘어가기 일쑤다. 14억 인구를 디지털 기술로 통제하고 반체제 목소리를 내는 인물은 가족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춘다. 

이런 점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명확하다. 중국은 신뢰할 만한 국가가 아니라는 인식이 굳어진다는 것이다. 신뢰가 사라지면 세계 어느 나라도 손잡고 함께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는 물론이고 모든 분야에서의 끔찍한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시진핑 주석의 중국은 하루빨리 이 같은 위기에서 벗어날 방책을 내놓아야 한다. 첫 단추는 코로나19의 발병지에 대한 믿을 만한 다국적 전문가들의 조사를 허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한 ‘파이낸셜타임스’의 사설을 받아들이는 일일 것이다. 만일 올 여름 이후 제2의 코로나19 대유행이 지구촌에 몰아친다면 중국은 돌이킬 수 없는 늪으로 빠질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두 번째 단추는 ‘병 주고 약 주는’ 형식으로 의심 받는 의료 외교를 즉각 중지하고 진지하게 세계 각국의 코로나19 대책에 동참하는 것이다. 중국 체제의 비민주성은 더 이상 관심거리가 아니다. 전세계 1천만 명 코로나19 확진의 현실 앞에서 중국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자세 전환은 중국의 미래만이 아니라 최악의 코로나19 이후 세계를 구하는 G2로서의 의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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