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실 대한결핵협회 인천시지부장
김실 대한결핵협회 인천시지부장

시대변화에 따라 지역의 변화도 함께한다. 한국전쟁의 참화가 지나간 인천 ‘수문통’ 지역은 복개가 되지 않아 조수간만의 차가 있어 바닷물이 밀려오고 나가는 갯벌지역으로 밀물이 밀려오면 동네 어른들이 밀려오는 ‘동아’라는 바닷고기를 잡았던 곳이다. 당시 수문통 물길 위 솔빛마을 아파트 있는 곳은 수도국산으로 동인천 쪽에서 계단(층층대)을 이용해 올라가는 교통 불편한 지역이었지만 많은 피란민이 몰려와 집 아닌 움막을 짓고 살던 곳이다. 층층대 아래쪽에는 당시로서는 꽤 커다란 연탄공장  두 곳이 밤낮없이 작업했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금의 송현시장 안쪽시장과 길 건너 수문통 물길로 가는 큰길 건너로 화평동 파출소 건너 뒷동네는 1년에 2~3번 장마 때 밀물이 겹칠 때 큰 홍수를 맞기도 했으며 어느 땐 무릎 위까지 물길이 차오르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 층층대 위 송현동 지역은 살아가기가 환경적으로 힘든 곳이지만 많은 피난민이 와서 주변의 시장, 특히 양키시장이나 중앙시장 그리고 배다리시장에서 생업을 이었으며, 뒤이어 송현시장이 살아나기도 했다. 당시 가장 많은 피난 실향민은 황해도에서 남하한 황해도 출신이 송현동 층층대 위 수도국산에 많았으며 피난살이에 어려운 삶을 이겨나길 바라며 가끔은 황해도식 재수굿이 있어, 어쩌다 시루떡을 얻어 먹던 기억이 나는 정겨운 곳이다. 

처음 동인천역에서 송현동 양복점 등 생활복을 팔던 곳에서 고목나무 방향으로 동인천역 철길 밑길이 뚫렸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일부러 저녁때 환한 전깃불도 보고 지하도상가 시장을 구경하러 갔다. 물론 1960년대 이전 송현동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저녁때 석유 등잔불이나 양초로 밝히며 살았으며 중앙시장이나 배다리시장에는 양초를 팔기 위해 학교에 다니지 못한 10여 세가 조금 넘는 아이들이 앞등짐 비슷한 목판을 메고 팔러 다녔다. 이들이 중앙시장, 양키시장, 배다리시장 그리고 송현시장을 키운 분들로 점차 생활이 안정되면서 외지로 떠나는 분들도 있었으나 시장을 중심으로 그 범위를 넓히다 동인천 지하도상가가 조성될 때 터파기에서부터 공사비를 내놓으면서 많은 시민들이 당시 지하공사로 통행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인천지역에도 지하도상가를 보게 돼 기뻐했다. 

지하도상가가 처음 열었을 때 상가 점주는 대부분 40대 전후 남성이었으나 점차 여성으로 바뀌어 이젠 어쩌다 남성이 있고 대부분 젊은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 찾아오는 고객이 여성이고 유행에 민감한 보다 젊은 여성이기에 그에 맞춰 점주가 나이 들면서 자녀에게 주거나 젊은 여성에서 전대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결과적으로 지하도상가 활성화를 가져오고 또한, 자연적인 시장경제에 따른 변화였다. 

동인천 지역 주변 상권이 살아나면서 동인천역에 백화점이 입점하고 옛 인천여고 앞에 대형마트가 들어오면서 재래시장인 중앙시장과 배다리시장 등이 활기를 잃어가다 더욱이 IMF 경제위기와 인현동 화재로 피폐해진 옛 상권지역인 동인천 지역 지상과 지하상권을 되살리기 위한 2002년 지하도상가 조례를 믿고 많은 지역상인들이 지하도상가 점유권에 투자해 힘들지만 점차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옛 시가지인 송현동 등에 피란 온 상인들의 노력이 있었다. 점차 지하상권이 경인선 역세권을 따라 동인천 지역에서 부평역까지 이어져 왔으며, 이는 현 자유시장 정책에 자율을 불어 넣어서 상권이 활성화된 것이다. 

자유시장 체제에서 자율적인 시스템에 변화가 없으면 상권 전체가 변화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지 관에 의한 규제와 제재 그리고 관리가 들어오면 자연히 죽게 돼 있다. 획일적 제제에서 상권 발전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지하도상가에 붙어 있는 권리금은 점유주의 경쟁적인 투자 노력으로 나타난 것으로 조례 개정으로 점유주의 전대 · 양도양수 금지는 사실상 재산상의 포기를 강요하는 것으로 이제까지 따라다닌 권리금도 사라지고 투자가 더 이상 있을 수 없기에 자연스러운 상권 위축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동안 어려운 고비를 잘 넘겨온 인천의 경인선을 따라 발달한 원도심 지하상권 그리고 인천만의 차별화된 지하상권이 살아나 인천을 사랑하는 지역민이 떠나지 않는 도시로 발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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