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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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거리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 기호일보
  • 승인 2020.07.03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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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아버지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깊은 대화를 나눈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별말씀 없이 그저 바라만 보셨습니다. 

간혹 성적이 괜찮은 성적표를 보시고도 ‘애썼다’라는 한마디뿐이었고, 사춘기 때 반발심으로 시험을 거부해 반에서 꼴찌를 했을 때도 가만히 눈을 감고만 계셨습니다. 무관심한 아버지를 보며 ‘우리 아버지 맞아?’라는 생각까지도 들었습니다.

어려웠던 시절, 십 남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그였습니다. 조용히 맡은 일에 충실했고 이웃과도 잘 지내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아홉 번째인 제 밑으로는 남동생이고, 위로 두 명도 형이었으니 얼마나 거칠었겠습니까.

어느 날, 두 형이 크게 싸웠습니다. 검도를 한 형과 합기도를 배운 형이 싸운 겁니다. 그때 아버님이 오셨습니다. 무릎 꿇은 형들에게 조용히 그러나 엄숙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방을 가지고 마당으로 가져오너라."

성냥을 건네며 불을 지르라고 했습니다. 형들이 울면서 잘못했다고 하자, 그제야 입을 떼셨습니다.

"형제끼리도 잘 지내지 못하고 싸움을 일삼는 너희를 내가 어찌 가르칠 수 있겠느냐. 차라리 고아원 아이 둘을 너희 대신 공부시키는 게 낫지 않겠느냐?"

형들은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습니다.

사실 싸움의 원인은 저에게 있었습니다. 큰형이 저를 꾸중하는데, 작은 형이 저를 편들면서 싸움이 시작된 거니까요. 나중에 그것을 아신 다음에도 아버지는 별말씀이 없었습니다.

재수 시절, 아버님이 하시던 일터에 불이 나서 어렵게 버티던 집안이 폭삭 주저앉았습니다.

일반대학을 도저히 갈 수가 없어, 입학금이 ¼에 불과한 교육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공부는 등한시했습니다. 운동부에 들어갔고, 그룹사운드 활동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니 발령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친구들이 정식 발령을 받아 출근하던 어느 날, 저는 가평의 자그마한 학교에 임시강사로 몇 달 나가게 됐습니다.

며칠 지난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쉬고 있을 때 할아버지 한 분이 교무실로 들어왔습니다. 자세히 보니 아버님이었습니다. 인천에서 그곳까지 오시려면 마장동까지 가서 시외버스로 몇 시간을 와야 올 수 있는 거리인데, 그곳까지 오신 겁니다.

교장 선생님은 큰 누이 나이쯤 됐습니다. 두 분이 인사를 나눌 때, 아버지는 거의 90도로 고개를 숙였지만, 교장 선생님은 고개만 살짝 숙였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왜 아버지는 오셔서 저런 수모를 겪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섭니다.

동료 선생님들과 매일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원치 않은 대학에 들어갔고, 원치 않는 직업을 가진 것의 배경에는 가난이 있었고, 그 중심에는 무능력한 아버지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저는 나쁜 아들이었습니다.

야간대학 편입을 위해 혼자 공부했습니다. 당시엔 소위 ‘대학발전기금’이 용인되던 시절이었습니다. 비교적 수월하게 시험을 봤는데, 관계자가 발전기금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런 돈을 낼 형편이 되지 않아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떨어졌습니다.

다음 해에 다른 대학 두 군데 시험을 봤습니다. 그때는 아버님이 식물인간이 돼 방에 누워만 계실 때입니다. 두 군데로부터 합격통지서가 공교롭게도 같은 날 배달됐습니다. 합격통지서를 의식도 없는 아버지 손바닥에 올려놓았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게 아닌가요?

그때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작년에 네가 떨어진 이유를 아시고는 많이 우시더구나."

그랬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맞아?’라고 생각한 저는 참 나쁜 아들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러나 하지 않았던 것은 저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식과 조금 떨어져서 모른 체하신 거였습니다. 그만큼 저를 믿으셨던 겁니다.

적절한 거리에서 제가 자유롭게 꿈을 펼쳐 나가도록 입이 아니라 눈으로 지켜봐 주신 아버지! 오늘은 무척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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