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현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윤인현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배려(配慮)는 ‘이리저리 마음을 쓴다’는 뜻이다. 특히 다른 사람들을 근심하고 걱정한다는 의미까지도 포함돼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타인에 대한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많이 듣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뉴스에 나오는 험악한 일들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헤드라인을 채우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외부 활동을 하기보다는 집안에서 서로 부대끼다 보니, 가까운 사람끼리 마찰이 빈번하게 일어나기도 한다. 가정폭력과 어린 학생들이 매일 학교에 등교하지 않아 아동폭력에 노출된 경우도 있다. 또 코로나19 전파에 대한 우려로 어떤 장소나 단체에 대한 거부감마저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 어떠한 삶이 진짜 배려하는 마음일까?

춘추(春秋)시대 초(楚)나라 장왕(莊王) 시절 인물에 관한 이야기이다. 성은 위(蔿)고 이름은 오(敖)로, 자(字)가 손숙(孫叔)인 이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손숙오(孫叔敖)로 불렀다. 숙오의 어릴 때 일화를 통해 그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보자. 초나라 시절에 ‘대가리가 둘 달린 뱀을 보면 죽는다’는 속설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손숙오가 그 대가리가 둘 달린 뱀을 보고 말았다. 그 뱀을 본 손숙오는 울면서 집에 돌아와 어머님께 고하기를, "어머님 저는 오늘 대가리가 둘 달린 뱀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죽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래, 어디서 보았느냐?", "저기 길가에서 보았습니다.", "그러면 그 뱀을 어떻게 하였느냐?", "저는 이미 그 뱀을 보았기에 죽게 될 것이고, 다른 사람이 그 뱀을 보면 죽을까봐 제가 그 뱀을 돌멩이로 쳐서 죽였습니다. 그리고 땅에 묻고 왔습니다.", "그래, 그러면 됐다. 얘야! 무서워하지 마라. 뱀이 너를 물지도 않았는데, 어찌 네가 죽을 수 있겠느냐? 더군다나 네가 남을 위하는 착한 마음으로 그 뱀을 죽이고, 남이 볼까 두려워해 묻어주기까지 안 했느냐? 그러니 무서워할 일이 없을 것이며, 또한 죽지도 않을 것이다."

손숙오가 어릴 때 행한 이 일화에서 ‘음덕양보(陰德陽報)’의 고사성어가 생겼다. ‘남모르게 착한 일을 행한 사람은 반드시 그 보답을 받는다’라는 뜻이다. 어린 나이에도 대가리가 둘 달린 뱀을 다른 사람이 보면 자기처럼 죽게 될까봐, 그 뱀을 죽이고 땅에 묻기까지 한 마음, 그 마음이야말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일 것이다. 훗날 손숙오는 초나라 재상 자리까지 올라 백성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정사(政事)를 펼쳤으며, 그 결과 당시 강대국인 황하 유역의 진(晋)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손숙오의 일화에서 봤던 것처럼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묵묵히 선행을 행하는 그 마음이 참다운 배려심이 아닐까? 현실적인 삶이 각박해서 처우에 대한 서운함이 원망의 마음으로 표출되기도 하고, 아니면 나의 핏줄이 아니라는 이유로 어린 아이들을 학대하기도 한다. 이런 때일수록 ‘음덕양보’를 한 번쯤 새겨보면 어떨까? 

코로나19로 어느 특정 집단과 장소에 대한 혐오스러운 말들이 나오기까지 해 작은 단체들이나 영세 자영업들은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떤 집단이나 개인을 탓하기 전에 먼저 각기 자기 위생을 철저히 하고 작은 위험요소라도 보이면 스스로 자가진단하는 차원에서 격리하는 삶, 그것이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마음 곧 ‘음덕양보’의 자세일 것이다. 그러면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재앙도 현실의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차단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은 평상시와 같은 일상생활이 필요한 때이다. 다만, 배려하는 마음으로 사전에 위험요소를 차단하는 태도, 곧 보이지 않은 곳에서의 선행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 이 어려운 난국을 헤쳐 나가는 발판이 되면서 동시에 코로나19 백신의 하나로 ‘배려’가 추가될 것이다. 따라서 뉴스의 헤드라인도 매일 훈훈한 미담으로 채워질 것이다. 그런 미래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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