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ther 90%’란 말은 쉽게 말해서 ‘가난한 사람(이제부터 나머지 90%를 소외된 90%라 부르기로 한다)’을 말한다. 전 세계 경제력을 살펴보면 이 세상의 부는 5~10% 소수의 사람들이 다 갖고 있다. 전 세계 인구의 5% 정도가 부의 90%를 갖고 있고, 10% 정도가 95%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데, 이 세상 사람들을 경제력을 갖고 있는 10%와 그렇지 못한 나머지 90%로 구분할 수 있다는 얘기다. 부를 소유한 10%의 사람들과 구분해서 경제력에서 뒤처진(과학기술의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사람을 소외된 90%라고 부른다.
현대사회에서는 과학기술이 강한 나라가 경제적 우위를 점하는데, 과학기술의 원래 목적은 인간에게 편리함과 유익함을 주기 위함이었지만, 현재는 부를 창출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산업은 경제력을 가진 10%를 위해서만 물건을 만들고 있고 부의 편중화는 더욱 가속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나머지 90%를 위한 과학기술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아닐까?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사람들이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경제 편중이 너무 심하면 사회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비용이 필요하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려면 과학기술이 모든 계층에게 공평하게 사용돼야 하고, 과학기술로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면 사회 문제가 적어질 것이고, 그만큼 사회는 건강해질 수 있다. MIT 디-랩에서는 ‘사회혁신성 디자인’을 선보였는데, 값이 싼 휠체어를 만들고자 작동 방식을 수동으로 바꿨고, 하체가 부자유한 사람들도 손으로 기계를 작동할 수 있도록 디자인 개념을 달리해 고가의 배터리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에 휠체어를 만들 수 있었다. 이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창의성 있는 설계를 사회혁신성 디자인이라고 일컫는다.
과학기술은 원론적으로 인간의 편리를 위해 사용돼야 한다. 과학기술이 본연의 목적에 맞게 사용됐을 때 과학기술은 비로소 가치(Value)를 가질 수 있다. 지난 인류 역사 속에서 기술은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지만, 지금은 기술이 돈을 버는 경제 수단이 돼버린 듯하다. 경제적 수익을 창출하는데 기술이 집중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기술 개발자들은 자신이 만든 기술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려 하지 않는다. 즉 우리가 기술 본연의 가치를 잊고 살고 있는 것이다. 기술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 경제력이 있는 소수의 사람들만을 위해 기술이 사용된다면 기술의 가치는 반감된다.
그리고 인류의 지속가능한 삶(인류의 삶의 터전인 지구 환경을 지속적으로 유지)에 어떤 수준의 기술이 적합한지에 대해 논의가 있어야 한다. 사람의 경제력에 관계없이 인간 모두가 평등하게 기술 혜택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기술 혜택을 받지 못하는 소외된 90%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필요하다. 아프리카에서 사용되는 물 이송장치인 큐드럼(Q drum)과 물을 깨끗하게 하는 휴대용 필터인 생명빨대(Life straw)가 그 예시로, 이런 디자인 제품을 ‘소외된 90%’를 위한 디자인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디자인은 사회문제를 완화시키고 더 나아가 해결해 줄 수 있으며, 이는 전반적으로 적정기술을 사용해 이뤄진다.
적정기술은 그 기술이 사용되는 사회 공동체의 정치·문화·환경적 조건을 고려해 해당 지역에서 지속적인 생산과 소비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기술로 문제의 근원을 찾고, 그것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흐름은 전 세계적으로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 또는 대중적으로 ‘소외된 90%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the Other 90%)’이라 불리면서 전 세계적인 국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창의적인 사회적 기업가, NGO활동가, 국제개발협력 종사자, 디자이너, 과학기술 종사자 등의 뜨거운 주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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