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연 인천문인협회 회장
김사연 인천문인협회 회장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FDA(Food and Drug Administration)는 미국의 식품의약국을 지칭한다. 1938년에 처음 창설된 이 기관은 미국 보건후생성(DHHS)의 산하기관으로 독립된 행정기구로 미국 내에서 생산되는 식품, 의약품, 화장품과 수입품, 그리고 일부 수출품의 효능과 안전성을 주로 관리하고 있다. FDA의 관리 감독은 매우 엄하고 까다로워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제품을 수입하거나 제조할 때 기준 잣대로 사용되고 있다. 인류의 건강 파수꾼 역할을 해 온 FDA의 탄생은 사전에 의도된 대통령의 보건정책 공약이 아닌, 1906년에 발간된 ‘업톤 싱클레어’의 「정글」이란 소설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은 제26대 ‘시어도스 루즈벨트’였다. 그는 소설 「정글」에 대한 서평이 각 신문에 실리고 식품 위생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만연하자 책을 구입해 읽었다. 작가의 도살장 근무 경험을 토대로 미국의 부패한 정육산업 현장과 이민 노동자들의 어려운 현실을 고발한 현장 소설을 읽은 대통령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격노하자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을 비롯한 많은 정치인들도 이 책을 구입해 읽었다. 대통령과 국민들의 분노에 공감한 정치인들은 그해 6월에 ‘식품위생과 약품에 대한 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1927년 ‘캘빈 클리지’ 대통령은 ‘식품 의약품 및 살충제 국(局)’이라는 특별법  집행기관을 구성했고 1938년 ‘프랭클린 루즈벨트’대통령은 식품, 의약품 및 화장품에 대한 법률을 제정하며 FDA란 독립된 행정기구를 창설했다. 

도대체 「정글」이란 소설의 작가는 누구이고 그 내용이 무엇이기에 세계 최강국인 미국에 FDA를 창설토록 했을까. 저자 ‘업튼 싱클레어(1878~1968)’는 남북전쟁이 끝나고 13년 후 볼티모어에서 탄생한 후 열 살 때 뉴욕으로 이사했다. 그의 집안은 남부의 몰락한 귀족 가문으로 부친은 주류 판매업자였다. 글재주가 뛰어났던 그는 열다섯 살 때부터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썼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 뉴욕주립대학을 거쳐 컬럼비아대학에 다닐 때는 3류 연예소설을 써서 학비를 충당하기도 했다. 소설 「정글」을 출간해 부와 명예를 동시에 차지한 그는 정치에 뜻을 두고 상·하의원과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으나 끝내 야망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쓴 20세기 전반기 서구 정치사 「랜디 버드」 11권 전집은 모두 베스트셀러가 됐고 그 중 세 번째 작품인 「용의 이빨」은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글’의 내용은 어떤 것이기에 미국의 여론을 분노로 들끓게 했을까. 주인공 ‘유르기스’는 리투아니아의 산악지방인 브렐로비치에서 태어난 20대 초반의 청년이다. 그는 미국이 자유·평등·기회의 땅이라는 소문을 듣고 전 재산을 처분한 후 약혼녀 ‘오나’와 온 가족을 이끌고 시카고의 빈민가에 정착한다. 그러나 돈이 떨어진 이들에게 미국은 더 이상 꿈에 부풀었던 천국이 아니었다. 주인공은 주택업자와 중개인의 사기에 걸려들어 월셋방 신세로 전락하고, 도살장에서 일하다가 숨이 끊어지지 않은 황소의 공격으로 발을 다친 후 결근을 이유로 쫓겨나 비료공장으로 옮겨야 했다. 

하지만 그곳 상황도 더 나을 것이 없었다. 통조림 공장에 취직해 중노동으로 심신이 허약해진 아내 ‘오나’는 둘째를 임신한 상태에서 공장장에게 동침을 강요당하고 이를 항의하며 공장장을 폭행한 주인공 ‘유로기스’는 전과자로 몰려 해고당한다. 돈이 없어 집에서 출산을 하던 아내가 죽자 주인공은 결국 알코올 중독자가 돼 방황한다. 주인공이 일했던 도살장에서는 결핵에 걸린 돼지, 임신한 돼지, 유산을 한 돼지, 유산된 핏덩이 돼지, 한참 덜 자란 돼지가 비위생적인 작업장에서 처참하게 도축돼 그럴듯한 포장의 통조림이 되고 햄과 베이컨이 되고 있었다. 

애당초 저자가 이 소설을 쓴 의도는 노동자의 작업 환경 개선에 있었다. 하지만 병든 가축까지 도살하는 비양심적인 경영주가 작업 현장의 청결과 위생, 그리고 근로자의 후생 복지에 신경이나 썼을까. 소설 「정글」을 읽은 국민들은 자신의 입으로 들어간 음식이 폐기물이나 다름없었고 쓰레기 처리장 같은 비위생적인 작업 환경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격노했던 것이다. 연재물로 간행됐던 이 장편 소설은 여러 출판사에 출판을 의뢰했지만 다섯 번이나 거절을 당한 후 단행본으로 출판됐다. 칼보다 강한 소설 한 권의 위력을 새삼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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