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수 동산중학교 교감
황규수 동산중학교 교감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는 일상의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 등으로 생활 형태가 이전과 다르게 바뀌었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외출을 줄였다. 더욱이 코로나19 장기화는 가계 수입 감소와 경기침체를 야기했고, ‘코로나 블루’로 불리는 우울감 또는 무기력증을 불러오기도 한다. 물론 이와 같은 상황이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만은 아니어서 가족 구성원들이 만날 시간이 많아지게 된 점이, 그들 사이에 친밀감을 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오랜 만남이 갈등을 발생시키기도 하지만 말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교회와 거리는 멀어졌지만 하나님과의 거리는 오히려 가까워졌다는 한 교인의 신앙고백도, 그것의 긍정적 효과를 보여 준다. 봄철 황사와 미세먼지가 감소했다는 보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칸트는 매일 오후 3시 30분이 되면 산책해서 사람들이 그런 칸트를 보면서 시계를 맞췄다고 하는데, 직장인이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요즈음과 같이 ‘확 찐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때에 산책만큼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유지시켜 주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맑은 공기를 마시고 땀을 흘리며 자연을 접하면서 상념에 젖다 보면 일상의 근심과 걱정은 어느새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시간이 어느 정도 될 때는 집 근처 산을, 그렇지 않으면 공원을 거닌다. 특히 근래에는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산에 오르는 가족도 눈에 띈다. 인파가 몰리는 놀이공원 등 다중이용시설을 피해 이곳에 온 듯하다. 아이를 안고 걷는 젊은 아빠의 모습은 다소 힘들어 보이기는 하지만 정겹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전 같았으면 흔히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더욱이 산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신도시의 정경은, 과학 기술 발전에 놀랍게 하지만, 자연환경을 지나치게 훼손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계단을 내려 둘레길 초입에 접어들면, ‘당신의 말이 누군가에게 한 송이 꽃이 되기를’이라는 액자 속 글귀를 선두로, 경구(警句)와 시 등이 사진과 함께 전시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중 특히 필자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은 주창윤의 ‘목련’, 도종환의 ‘담쟁이’, 장석주의 ‘대추 한 알’ 등의 시이다. 이 시들 속에 담겨 있는 ‘기다림’·‘극복’·‘인내’ 등의 의미는 읽는 이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산을 중심 소재로 한 시가 그곳에 소개되고 있지 않은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근자에 필자는, 한 대학 연구원에서 추진하는 연구사업을 진행하면서, 일제강점기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인천을 시의 공간으로 취하고 있는 인천 시편들을 조사해 목록화 하면서, 무려 180명의 시인이 창작한 1천26편의 시를 시인별로 정리할 수 있었다. 

이 가운데 청량산을 주된 배경으로 한 시는 8편 정도가 되는데, 이 중 특히 주목되는 시는 이병춘의 ‘시월의 청량산’이다. "흥륜사 풍경소리/청설모 꼬리에 달려가고/해넘이는 비행기를 안고/영종도 너머로 사라진다.//미움은 흘러 보내고/욕심은 태워 버리고/웃는 얼굴 다정한 말로/부끄럼 없이 살아야지/시월의 청량산은/산도 바다도 저녁노을"(3·4연). 인용 구절에서와 같이 이 시에는 그곳에서의 풍경과 함께 깨달음이 잘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동네 공원을 거닐다 화장실에서 눈에 띈 3편의 시도, 필자에게는 큰 관심거리였다. 나태주의 ‘돌멩이’, 김기택의 ‘바람 부는 날의 시’, 최두석의 ‘샘터에서’가 그것인데, 이 시들 또한 유명한 시인들의 작품으로 그 자체의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들에서 친밀감을 느끼기 어려운 점은, 작품이 전시된 장소와의 연관성을 거의 찾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혼자 놀던 바닷물 들락날락 민낯을 드러내면/갯벌에서 조개를 캐 생계를 잇던 먼우금 원주민들"이라는 구절이 담겨 있는, 정경해의 시 ‘인천 48-송도국제도시’를 여기에 소개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이처럼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는 사람들을 지치게 하지만, 산책하듯 일상에서 조금 벗어나 시를 읽는 것처럼 새로운 관점에서 그 속에 담겨 있는 여러 의미를 음미하다 보면, 그것이 가져다 준 긍정적 효과도 자연스럽게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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