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코로나19의 여파가 길어짐에 따라 고통이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힘들다’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어서 진정되기를 바랍니다.

고통은 주로 ‘외부’에서 ‘나’에게로 옵니다. 그러나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그 고통을 곱씹어보면서 절망하는 것입니다. 즉, 고통의 부정적인 해석이 고통을 심화시키는 것이지요.

「백 번째 원숭이를 움직인 생각」에 유전자 연구로 유명한 무라카미 카즈오 교수의 이론이 소개됐는데,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유전자에 담긴 능력의 몇 %밖에 사용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이 능력을 펼치려면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 힘이 바로 ‘플러스 사고’ 즉, 긍정적인 사고라고 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모든 정보가 모여 있는 유전자에는 ‘ON’과 ‘OFF’ 상태가 있는데, 이를테면 암에 걸린 사람은 암에 걸릴 유전자가 ‘ON’ 상태가 돼 있는 거라고 합니다. 이것을 치료하려면 암 유전자를 ‘OFF’ 상태로 만들거나, 암을 예방하는 성질의 유전자를 ‘ON’ 상태로 되게 해야 하는데, 이것을 ‘ON’이든 ‘OFF’이든 좌지우지하는 게 바로 ‘긍정적인 사고’라는 겁니다.

이 이론은 희망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외부에서 들어온 ‘고통’을 우리가 긍정적으로 해석하기만 하면 유전자가 몸에 유익한 ‘ON’ 상태로 바뀌게 돼 엄청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사람만 그런 것은 아닌가 봅니다. 「빅 예스」라는 책에 에딘버러시립공원에 있는 나무들을 관찰한 결과가 실렸는데요. 이 연구 결과도 흥미롭습니다. 열두 그루 나무를 심고, 각각의 나무에 예수님의 열두 제자 이름을 붙여두었다고 합니다. 세월이 흘러 그늘에서 쉴 수 있을 정도로 무성해졌을 때, 공원을 찾은 사람들이 예컨대 ‘요한’ 나무를 보고 "요한아, 잘 있었니? 사랑스럽구나"라고 하고, ‘유다’ 나무를 보고는 "나쁜 놈 유다야, 네가 예수님을 팔아먹었지? 저주나 받아라"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오래지 않아 유다 나무가 말라 죽었던 겁니다.

이렇게 말 한마디에 나무의 생사가 갈릴 정도라면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힘든 시절일수록 서로를 보듬는 손길과 따뜻한 말 한마디가 보이지 않던 ‘희망’을 찾게 하는 힘이 돼 줄 겁니다. 

힘들다고 화를 내고 원망을 하는 사람보다 묵묵히 힘겨움을 이겨내며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에게 마음이 더 갑니다. 모두가 지쳐 있을 때도 그런 사람과 함께하면 위로가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과 자주 만나고 싶어집니다. 이런 사람을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합니다.

「긍정력 사전」에 어느 세미나장에서 참석한 사람들이 나눈 대화가 인상적입니다. 누군가가 꽃향기를 맡고 있을 때 다른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꽃을 좋아하시나 봐요? 저는 장미와 백합이 싫어요. 장미는 너무 흔해서 싫고, 백합은 향기가 이상해서 싫어요." "그래요? 저는, 장미는 향기 때문에 좋고 백합은 꽃이 크고 힘이 있어서 좋던데요."

독자 여러분은 어느 사람에게 마음이 가나요? 후자에 해당하는 분에게 마음이 가지 않나요? 싫어하는 이유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 아니면 좋아하는 이유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 중에 여러분은 어느 쪽에 가까우신가요?

긍정적인 사람이냐 부정적인 사람이냐를 구분할 수 있는 잣대는 사물이나 사람의 ‘좋은 면’을 보느냐, ‘나쁜 면’을 보느냐입니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크나큰 고통이 돼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시련이라면 그것을 오히려 성장의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코로나로 인한 변화가 요구하는 불편함을 기꺼이 그리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런 가르침을 우리 몸속의 유전자가 알려주는 비밀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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