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장담할 수 없어도, 뙤약볕에 바람 한 점 없는 날 홍예문을 지나면 제법 시원한 바람을 받을 수 있으리라. 편서풍이 서해안을 지나 인천에 상륙한 뒤 홍예문을 빠져나갈 때 속도가 붙기 때문일 텐데, 고교 시절, 그런 현상을 ‘베르누이 정리’라 배웠다. 구체적 내용은 잊었지만, 단위 시간에 흐르는 공기의 양은 같다고 했다. 바다로 넓게 들어온 바람이 홍예문 좁은 통로로 휩쓸리면 속도가 붙을 터.

중력의 영향을 받는 바닷물도 비슷하겠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인천에서 흔히 볼 수 있을 텐데, 먼바다에서 번뜩이며 육지로 밀려드는 바닷물은 5∼6m 상승하는데, 바닷물이 들어오는 폭을 좁히면 빨라진 물줄기가 막대한 에너지를 품으며 한순간 높아지겠지. 그런 현상은 시화방조제가 하루에 두 번 연출한다. 그 힘은 조력발전으로 이어지는데, 과거 이순신 장군은 진도 웃돌목 명량해협에서 그 현상을 모르는 왜군을 전멸시킬 수 있었다.

인구 300만에 휘황찬란한 공항과 신도시, 그리고 굴지의 항만을 가진 인천은 개발 이전 소박한 어촌이었다. 해안의 드넓은 갯벌은 커다란 선박을 쉽게 받아주지 않기에 개항하면서 대규모 매립은 필연이었다. 물동량이 커지며 매립 면적은 넓어졌고 지역의 확장과 비례하며 매립은 광범위해졌다. 어느새 인천 앞바다에 갯벌은 거의 남지 않았다. 그러자 수산자원은 물론이고 해난 완충 수단도 자취를 감췄다. 피부에 닿지 않겠지만, 이산화탄소 제거로 온실효과를 예방하던 갯벌의 효과는 사라졌다.

황해는 동해나 태평양에 비해 수면이 낮아 파도가 그리 높지 않다. 황해 안쪽에 자리한 인천은 태풍의 내습에서 어느 정도 비켜 있어 해난이 드물었고 규모도 크지 않았다. 가끔 닥치더라도 앞바다 160여 크고 작은 섬들이 완충했지만, 사정이 바뀌었다. 지구온난화에 이은 기상이변이 심각해지면서 규모가 커진 태풍이 늘어나더니 항만에 해수 유입이 잦아진다. 그뿐인가. 복잡했던 리아스식 해안이 콘크리트로 단순해지면서 너울성 파고에 취약해졌다. 광범위한 매립의 부작용이다.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 4천628만여㎡(1천400만 평)의 갯벌을 메우고 들어선 인천공항은 지구온난화가 이끌 재해에 무방비다. 해수면 상승에서 자유롭지 못할 뿐 아니라 태풍에 이은 너울성 파도, 이웃 국가의 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를 피할 도리가 없다. 아직 이렇다 할 재난이 인천에 다가오지 않았지만 심화하는 기상이변을 고려할 때,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송도신도시와 남동공단도 피해갈 수 없을 텐데, 인천시는 매립을 멈추지 않는다. 알량한 영종도 갯벌을 호시탐탐 노린다. 도시의 활력을 위해서? 그저 땅 욕심이지만, 후손의 삶은 위협받는다.

인천공항에서 영종대교를 지날 때 나타나는 갯벌은 살아있는 바다의 생경하지만 진귀한 경관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그 주변이 사라져간다. 항로 준설로 퍼올린 개펄을 쏟아 한상드림아일랜드라는 이름의 섬을 준비하며 도박과 골프장을 꿈꾼다. 영종대교 건너의 갯벌도 항로 준설로 사라질 운명이라는데, 이즈음, 베르누이 정리를 소환해보자. 하루 두 차례 다가오는 인천의 바닷물은 통로가 더욱 좁아진 영종대교 아래에서 파고를 높일 텐데 그때 태풍이 불고 해일이 닥친다면 한상드림아일랜드는 안전할까? 너울이 휩쓴다면 공항 활주로는 멀쩡할까?

항로 준설에 문제를 제기하는 게 아니다. 흔히 30년 또는 50년, 심지어 100년 앞을 바라보고 안전하게 설계했다지만, 지구온난화와 그에 따르는 기상이변은 인간의 과학이 예견한 수준을 쉽게 뛰어넘는다. 2050년 이내에 지구는 거주 불능 행성이 될 거라는 예측이 나왔다. 파국이다. 갯벌 매립으로 바닷물 통로를 좁히면 2050년 훨씬 이전부터 인천은 거주 불능 도시로 파국을 만날지 모른다. 영종2지구 갯벌을 줄이거나 없앤다면 흰발농게에 이어 인류는 자취를 감출 것이다.

없어진 갯벌을 다시 만들 재간이 우리에 없지만, 항로 준설로 챙기는 어마어마한 개펄로 송도신도시와 인천공항 앞에 파국을 막아낼 다도해를 일부 조성할 수 있다. 지구온난화를 완화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의 생존 공간은 다소 안전해질 텐데, 탐욕은 후손의 생존을 안중에 두지 않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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