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인천시 서구청장
이재현 인천시 서구청장

구청장을 맡고 난 후 엄청난 민원량에 새삼 놀라는 중이다. 곳곳마다 불편사항이 있고, 해결해야 할 것도 산더미다. 한국의 사회갈등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2위를 차지할 만큼 높고, 행복 순위가 61위로 상당히 낮은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고질적인 민원에는 어김없이 갈등이 있기 때문이다. 이 갈등을 해결해야 주민의 행복감을 높일 수 있다. 그 답은? 바로 소통이다. 

크고 작은 현안들이 즐비한 서구지만 아무리 복잡하게 얽힌 갈등이라도 소통이 원활하면 해결할 수 있다.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갈등도, 지역 내 조그마한 불편사항도 마찬가지다. 최근 겪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불로동 월드아파트 일원(검단로) 교통개선 관련 민원으로 실사와 면담을 거듭했음에도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뒤엉켜 간극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전 주민과 전문가, 행정기관이 적극 소통한 결과 드디어 해결책을 찾아냈다. 현황은 대략 이렇다. 불로동 한일아파트 앞 검단로는 검단에서 김포시~일산대교로 연결되는 유일한 노선이다. 도로 구조상 월드아파트 앞 삼거리를 지나 동부아파트 입구 교차로에서 유턴 후 진입해야 한다. 하지만 유턴 차량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길게 이어지는데 대기차로는 60m에 불과해 상황이 복잡했다. 통행량이 많을 땐 직진 차로 2개 중 1개를 점유하다시피 하며 교통혼잡을 가중시켰다. 도로 폭도 좁아 대형 트럭의 경우 유턴 시 상당 시간이 소요됐다. 

이를 해결하고자 지난해 7월 유턴 대기차로 추가 확보를 1안, 좌회전 전용차로(사거리 교차로) 설치를 2안으로 두고 주민설명회를 개최했다. 그 결과 주민 대다수가 동의한 1안에 맞춰 유턴 대기 차로를 245m로 늘리는 한편, 5t 이상 및 건설 차량은 유턴을 금지시키고 조금 더 가서 유턴하게 했다. 무단횡단 방지 펜스와 미끄럼 방지 포장 등도 설치했다. 

하지만 공사 효과가 미비하다며 도로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거리를 조성하자는 의견은 계속됐다. 일산대교 방면의 농로를 도로로 정비해 유턴 없이 바로 좌회전 할 수 있게끔 하자는 거였다. 하지만 이 방법 역시 암초에 부딪혔다. 인근 한일아파트 주민들이 사거리가 만들어질 경우 지대가 낮은 한일아파트가 지하화될 수 있음을 문제로 제기한 것이다. 방음벽을 상향 조절하면 해당 아파트 1층과 2층의 조망권이 상실된다는 이유도 더해졌다. 더군다나 현재 있는 농로가 일산으로 빠지는 주도로가 아닌데도 혼잡한데 사거리까지 만들어지면 통행량이 급격히 늘면서 소음 및 매연 등 직접적인 피해가 상당할 거라며 결사반대하고 나섰다. 

‘현행대로 유턴하자’ ‘사거리를 만들자’를 두고 주민 간 첨예한 대립이 이어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 ‘어찌하오리까! 솔로몬의 혜안을 주소서!’란 말이 절로 나왔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가운데 이해 당사자들이 다 함께 만나 고민하고 토론해 보자는 의미에서 지난 6월 말 협의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민원을 제기한 주민 외에도 서구 도시계획위원회 위원들을 비롯해 서부경찰서와 도로교통공단 소속 교통전문가가 참석했다. 그간의 추진사항을 점검함과 동시에 사거리 설치 관련 논의가 이뤄졌다. 교통전문가들이 오래 기간 고민해서 내놓은 우회도로라는 대안도 제시됐다. 초반에는 예상했던 대로 설전이 벌어졌다. 사거리 조성 주장을 관철시키고자 논문 자료에 버금갈 만큼 많은 준비를 해온 주민과 다른 참석자 간 팽팽한 기운이 감돌았다. 

하지만 대화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교집합을 찾아냈고, 각 방법의 장단점을 심도 있게 검토하면서 사거리만이 답이 아님을, 우회도로도 충분히 수용 가능함을 확인했다. 길고 긴 논쟁을 마무리하고 협의점을 찾은 순간이다. 그렇게 모두 모여 치열하게 논의한 끝에 우회도로란 결론을 도출해냈다. ‘유턴이냐? 사거리냐?’를 두고 날을 세웠던 갈등이 우회도로라는 대안을 만나 가라앉은 것도 그 일환이다. 

복잡하게 얽힌 문제일수록 소통은 더욱 필요하다. 큰 문제든 작은 문제든 소통에 기반해 갈등을 풀어내고자 한다. 그게 바로 솔로몬의 해법이자 행복을 높이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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