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아틀란테라는 여인의 기구한 삶이 그리스 신화에 나옵니다. 아르카디아의 왕인 이아소스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아들을 선호하던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산속에 버려집니다. 곰의 젖을 먹고 자라던 중 사냥꾼에게 발견돼 성장한 그녀는 아름다웠지만, 당시 여성들과는 달리 거친 사냥과 달리기를 좋아했습니다. 자라면서 그녀는 자신이 결혼하면 남편이 동물로 변할 것이라는 신의 계시를 듣고 그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결혼하지 않고 영원히 독신으로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이곳저곳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결투에서 늘 승리하는 그녀에 대한 소문은 아버지의 귀에까지 들어갑니다. 아버지는 용맹스러운 딸을 다시 자식으로 받아들여 궁전으로 불러들입니다. 그러고는 혼기가 꽉 찬 딸에게 결혼할 것을 요구합니다. 

아름다운 공주의 남편감을 찾는다는 소문이 나자 청혼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동물로 변할 것을 두려워한 그녀는 꾀를 냈습니다. 자신과 달리기 경주를 해서 자신이 지면 결혼하겠지만, 자신이 이기면 남자의 목숨을 빼앗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청혼자들과 경주에서 모두 승리했습니다. 어김없이 청혼자들은 죽었습니다. 이 달리기 경주의 심판을 보던 히포메네스란 청년이 그녀에게 반했습니다. 자신도 그녀와 경주를 하겠다고 마음먹지만, 도저히 그녀를 이길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에게 소원을 간절히 빌었습니다. 그러자 아프로디테는 황금 사과 3개를 주며 경주에서 이길 방법까지 알려줍니다. 

드디어 경주가 시작되는 날, 그녀는 첫눈에 그에게 반했습니다. 그러나 결혼하면 안 되는 운명임을 아는 그녀, 하지만 본능적인 사랑의 감정이 사라지지 않아 혼란스러웠습니다. 경기가 시작되자 그녀가 앞서 나갔습니다. 그때 그는 황금 사과 하나를 그녀 앞에 던집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황금 사과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한 그녀가 그걸 줍는 동안 그가 앞서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시 그녀가 앞서자 그는 다시 황금 사과를 던졌습니다. 잠시 후 다시 그녀가 앞섰습니다. 이제 결승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앞서 달리는 그녀에게 마지막 남은 사과를 던지고, 그가 결국 승리했습니다.

그녀는 일부러 사과를 주웠을 겁니다. 자신이 이기면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 그를 죽여야 했지만, 자신이 지면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져주는 것이 더 행복했을 겁니다. 두 사람은 아프로디테 신전에서 사랑을 나눕니다. 그러나 이게 문제가 됩니다. 아프로디테는 자신이 황금 사과를 준 덕분으로 둘이 결혼할 수 있었음에도 자신에게 감사의 인사조차 하지 않았고, 더구나 자신을 기리는 성스러운 신전에서 치른 불손한 사랑의 행각으로 인해 몹시 분노했습니다. 두 사람은 암사자와 수사자가 되어 마차의 앞쪽에 나란히 매달리게 되는 형벌을 받습니다. 

그러나 행복했을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으니까요. 승리를 목전에 두고도 황금 사과를 줍는 바람에 패배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함께하고 싶은 그녀의 아름다운 욕망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져줄 수 있습니다. 사랑은 이기고 지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져주는 것이 그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연애 시절을 떠올려보면 아틀란테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중식을 좋아하던 ‘나’이지만 그 사람과 식사를 하러 갈 때는 한식을 좋아하는 ‘그’를 위해 한식집으로 가곤 했고, 전쟁영화를 좋아하던 ‘나’이지만 그 사람이 좋아하는 코미디영화를 보러 가곤 했습니다. 

이렇게 져주는 태도가 거듭될수록 상대는 사랑에 흠뻑 취할 겁니다. 져주는 것이 곧 이기는 것이라는 이치를 아틀란테로부터 배웁니다. 「물속의 물고기도 목이 마르다」라는 책에 부부간에 나누는 대화가 나옵니다.  "‘연호 아빠, 생선 맛있는데 왜 안 드세요?’ ‘입맛이 변했나 봐’ 아내와 얘기하는 옆에서 두 아들 녀석이 맛있다며 생선을 먹는다. 이제 제법 거짓말이 는 것을 보면, 나도 아버지가 되어 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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