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신탁제도’는 공직자가 보유하고 있는 사적인 재산과 공직자로서 수행해야 할 공적 직무 간 이해충돌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법적 장치다. 대표적인 예가 ‘주식 백지신탁제’다. 고위공직자가 특정 주식의 취득·보유·매각으로 재산상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해당 주식을 매각 또는 백지신탁(Blind Trust) 하는 제도다. 같은 방식으로 부동산에 적용하면 ‘부동산 백지신탁제’가 된다. 

최근 경기도민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0%가 고위공직자의 부동산 백지신탁제에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놀랍지 않은 결과다. 많은 국민들이 정치인과 고위공직자의 내로남불식 처신에 분노하고 있다. 성 추행, 자식 관리, 학력 위조, 위장 전입, 세금 탈루 등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부동산 문제는 그 정점에 있다. 고위공직자에 대한 1주택 보유 ‘권고’는 지난해 청와대에서 최초로 시작된 자발적 운동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처분 흉내나 내며 주판알을 튕기는 고위인사가 청와대 내에 즐비하다. 책임지고 진두지휘해야 할 사람들이 이 모양이니 정책 실현 의지를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도지사가 4급 이상 공무원 및 공공기관 임원들에게 다주택을 모두 처분하라고 강력히 권고했다. 이 지사는 ‘자신의 권고 사항을 내년도 인사 평가에 반영할 것이며, 다주택 보유 공무원은 관련 업무에서도 배제할 것’이라고 했다. 물론 쉽지 않은 문제다. ‘헌법에 보장된 사적 재산권을 (법률이 아닌) 지자체 내부 규정으로 제한하는 게 가능한 지, 지방공무원법상 승진 임용 기준에 적시돼 있지 않은데 도지사 방침이 효력을 가질 수 있는 지’ 등은 백지신탁제가 입법화될 때까지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도민 다수가 지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동안 고위직부터 말단 공무원까지 온갖 지역개발 정보를 자신들의 사적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해온 위선적 행태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수술실CCTV 설치법’, ‘이자제한법’ 등 소위 ‘이재명 법’으로 불리우는 법안들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개념이 투영됐기 때문일 듯하다. 소수 그룹이 점유해온 그들만의 독점과 특권을 허물어 다수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 말이다. 그래서 환영할 수밖에 없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