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주요 현안에 시민의 목소리를 담으려는 시도가 활발해졌다. 반가운 일이기는 하지만 자칫 정책 입안자들의 ‘책임 떠넘기기’에 이용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상황에 따라 시민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본보는 각종 현안에 대한 시민 의견을 수렴하고 정책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문제점을 짚어 보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인천시 공론화위원회 위원들이 7월 29일 시청 공감회의실에서 친환경 폐기물 관리정책 전환과 자체매립지 조성 관련 공론화위원회 정책권고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제공=인천시>
인천시 공론화위원회 위원들이 7월 29일 시청 공감회의실에서 친환경 폐기물 관리정책 전환과 자체매립지 조성 관련 공론화위원회 정책권고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제공=인천시>

인천시 공론화위원회는 지난 4월 응답자의 72.2%가 ‘현재 운영 중인 소각시설 현대화’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과 자체매립지 조성에 75.2%가 동의했다는 시민인식조사 결과를 정책권고문에 담아 박남춘 인천시장에게 전달했다. 시민인식조사가 잘못됐다는 시민단체의 지적도, 공론화위가 공정성을 잃었다는 정치권의 문제 제기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권고문에는 기존 소각장을 현대화하고 자체매립지 후보지 선정위원회 구성 후 입지타당성 등을 조사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기존 소각장이 있는 청라국제도시 주민들은 반발하고 있다. 청라국제도시총연합회는 3일 시 공론화위의 ‘여론 조작’ 의혹에 대한 근거를 제시했다. 또 지역주민들과 함께 3천 건의 민원 릴레이에 돌입하기로 했다. 이들은 국민권익위원회, 감사원 등에 진정서, 공익감사 신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청라총연은 경영컨설팅 전문가의 자문을 들어 시민인식조사가 특정한 답변을 연상하게 해 유도하는 전형적인 ‘여론 조작 기법’이라고 주장했다.

더구나 시가 조례까지 위반하며 공론화위의 권고문 수령을 강행했다고 덧붙였다. 시 공론화위 관련 조례 4조(위원회 구성)는 ‘시 공무원에 해당하는 위원의 수는 15분의 3을 초과하지 아니하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재 공론화위원 수는 14명, 이 중 3명이 시 공무원으로 조례 규정을 어겼다는 것이다.

김교흥(인천 서갑)국회의원의 지적도 있었다. 시 공론화위가 4월 1차 시민인식조사 결과를 5월 공개해 7월 실시한 참여단의 2·3차 조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비판이다. 특히 1차 조사에서 발생지 처리 원칙에 따른 지자체별 소각시설 설치 방안을 보기로 제시하지 않고 기존 시설의 현대화를 유도하는 질문으로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박 시장은 공정성과 독립성이 훼손된 공론화 결과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며 "시 공론화위는 찬반 단체와 소통을 담보한 공론화 절차를 다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시는 시민인식조사 결과를 근거로 한 공론화 절차를 중단해야 한다"며 "시와 공론화추진위는 공론화위에 전달할 최종 결과보고서를 피해주민 등에게 먼저 공개해 검증받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공론화위 공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일부 청라 주민단체의 입장이고 인천평화복지연대, 인천녹색연합 등은 권고문을 수용한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며 "이번 공론화는 각 분야 전문가들에 의해 설계되고 여론조사 전문기관을 통해 추진된 사항으로 표본 산정, 조사 기법 등 방식과 절차에 대한 법적·통계학적 기준에 따라 진행됐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시의 이 같은 해명이 더 비판받고 있다. 시가 권고문 수용 입장을 냈다고 밝힌 시민단체들은 숙의 과정인 시민대공론장에 참여해 긍정 의견을 냈던 곳이기 때문이다. 시는 이 단체들의 수용 의견과 일부 주민단체의 수용 의견을 방패 삼아 권고문을 그대로 이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창호 기자 ych23@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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