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영화 시상식인 아카데미에서 남우 혹은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일은 배우 인생에 있어 최고의 영광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우주연상 수상자에게 찾아오는 불행한 징크스가 있었으니, 바로 ‘오스카의 저주’다. 오스카의 저주란 여우주연상 수상으로 배우의 커리어는 상승곡선을 그리는 반면 사생활은 파국으로 치닫는 패턴을 일컫는다. 

오스카의 저주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2001년부터 12년간 9명의 정상급 여배우들이 연인과 결별할 만큼 악명 높은 이 징크스는 사실 1930년대부터 시작됐다. 베티 데이비스, 진저 로저스,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 고전 할리우드 스타들도 이 불운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그 중에서도 영화 ‘조니 벨린다’에서 농아 역을 훌륭하게 소화한 제인 와이먼은 결혼운이 없는 최고의 스타로 자주 거론된다. 왜냐하면 전남편이 제40대 미국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이기 때문이다. 연기력이 훌륭하지 않았더라면,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지 못했더라면, 그래서 이혼하지 않았더라면 제인 와이먼은 영부인이 될 수 있었을까? 그랬더라면 그녀는 더 행복했을까? 제인 와이먼의 뛰어난 연기를 볼 수 있는 1948년작 ‘조니 벨린다’를 만나 보자.

캐나다 노바 스코시아의 작고 가난한 섬에 귀머거리 처녀 벨린다가 산다. 평생 학교 문턱도 밟지 못한 그녀는 아버지의 방앗간 일을 도우며 생활하고 있다. 외지에서 온 의사 로버트는 따뜻한 미소의 벨린다를 눈여겨보고, 수화를 가르치며 친구가 된다. 세상과 단절돼 외롭게 살아가던 벨린다는 의사선생님과의 만남으로 생기를 얻는다. 

그러던 중 한 사내가 벨린다를 겁탈해 임신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러나 마을에는 의사선생님이 불쌍한 여자아이를 농락했다는 소문이 퍼지고, 보수적인 시골에서 벨린다와 로버트 선생은 철저히 소외된다. 결국 도시 병원에 일자리를 구한 로버트는 안정되는 대로 벨린다와 아이를 데리러 오겠다는 편지를 남기고 잠시 곁을 떠난다. 

사고로 아버지마저 잃었지만 밝고 꿋꿋하게 아들을 키우던 벨린다는 어느 날 자신의 아들을 찾으러 왔다는 악마 같은 사내와 대면하고, 아이를 지키기 위해 남성에게 총을 겨눈다. 살인죄로 법정에 선 그녀를 보는 주위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지만 의사선생님만은 끝까지 벨린다 편에 서서 정당방위였음을 주장한다.

영화 ‘조니 벨린다’는 여주인공의 이름 벨린다와 그녀의 아들 조니를 합친 이름이다. 작품의 전반적인 줄거리는 가련하고 기구한 운명의 여성의 삶을 다루고 있으나, 러닝타임의 대부분은 의사선생님과 벨린다의 우정, 로맨스로 따뜻하게 채워져 있다. 엔딩 또한 권선징악적 결과로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연출, 음악, 시나리오 등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무난하게 구성돼 있다. 튀는 구석 없이 잔잔한 흐름 속에서도 청각장애와 언어장애를 앓는 주인공 벨린다의 모든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 연기는 단연 압권이다. 그 결과 1949년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벨린다 역의 제인 와이먼은 "입을 다문 대가로 이 상을 받았는데, 기회가 온다는 또 하겠습니다"라는 짧고 강렬한 소감을 밝혔다. 

수상 후 그녀는 레이건과는 이혼했지만 당대 최고의 감독인 알프레드 히치콕, 더글라스 서크의 작품에 출연하며 네 번의 여우주연상 후보로 거명될 만큼 상승세를 이어갔다. 비록 영부인이 될 인연이 없었지만 훌륭한 연기자이자 영화 팬의 사랑을 듬뿍 받은 배우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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