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혼자 밥을 먹는 혼밥족들이 늘어나면서 혼밥 맛집도 여러 곳에 생기고, 이들만을 위한 새로운 메뉴까지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혼밥하는 이유를 들어보면 ‘자유롭고 간편하기 때문’이라는 사람도 있고, ‘식사 때가 됐는데 같이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과 같이 먹는 게 편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람도 있다. 

요즈음엔 1인 가정이나 독신, 미혼이 늘어나면서 혼자 밥 먹는 것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을 뿐더러 유행처럼 퍼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혼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때가 됐으니 어쩔 수 없이 혼자서 대충 한 끼 때우는 느낌이 들어서 별로 내키지 않는다. "언제 식사 한번 같이합시다." 반가운 사람과 만날 때 자주 하거나 듣는 소리다. 끼니를 챙기기 힘든 시절에 인사치레로 건네던 우리 민족 특유의 인사말이라고도 하지만, 우리는 결코 아무나 보고 ‘밥 한번 먹자’고 하지는 않는다. 별로 내키지도 않는 사람과 마주 앉아 밥까지 먹을 일은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어울리기를 무척 좋아했던 한 선배가 생각난다. 그는 사회생활을 잘하려면 인간관계가 원만해야 하는데 ‘차통, 밥통, 술통’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차를 마시면서 대화하고, 술과 식사를 하면서 소통하면 관계도 좋아지고 어려운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선배와 함께했던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그 시절을 떠올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웃곤 한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도 ‘식사는 가장 오래된 외교 수단’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평화롭게 식탁에 마주 앉아 대화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소통의 방법’이라는 의미가 들어있는 말일 것이다. 실제로 힐러리 장관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사람과 만났지만, 허심탄회(虛心坦懷)한 대화는 늘 식사자리에서 나눌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수년 전에 오인태 시인이 「시가 있는 밥상」이란 책을 낸 일이 있다. 60편의 시와 에세이, 그리고 60개의 밥상 사진이 실려 있는데, 시가 밥상을 노래하기도 하고 에세이가 밥상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 느낌이 들어서 묘한 감동을 준다. 시인은 서문에서 밥상은 단순한 음식의 집합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상을 복원하고자 하는 의지이자 간절한 염원의 결정체라고 말한다. 그는 또 우리는 인사말로 흔히 ‘밥 한번 먹자’는 말을 하는데, 함께 먹는 밥은 우리에게 그냥 단순한 밥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밥을 먹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친목을 다지며, 서로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하나의 매개라는 것이다.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 삶을 같이한다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시인은 또 밥을 같이 먹는 것은 나와 남의 삶이 겹쳐지는 과정이어서 밥을 같이 먹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교집합은 넓어지고 각자의 삶은 점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고향(故鄕)이란 말의 ‘마을 향(鄕)’자에서 해답을 찾기도 한다. 오늘날에는 ‘鄕’을 ‘마을 향’이라고 읽지만, 갑골문자(甲骨文字)에서는 그릇에 담긴 음식을 가운데 놓고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음식을 나눠 먹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라고 한다. 그러므로 고향은 밥을 함께 먹었던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매일 밥을 함께 먹던 식구(食口)들이 사는 곳이었고, 밥을 같이 먹으며 늘 함께 뛰놀던 친구들이 살던 곳. 그래서 고향 사람을 만나면 더 정겹고 반가운 느낌이 들고, 밥을 함께 먹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고향 사람처럼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식사는 혼자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일반적인 일이다. 흔히 술이나 밥을 약속으로 삼는 일이 많은 것을 보더라도, 같은 자리에서 식사하는 일은 커뮤니케이션이 포함된 사회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밥 한번 같이 먹자’고 말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상대를 받아들이고 마음을 써주는 일이면서도 그 이상의 크고 진한 의미가 있다. 

 코로나19로 일상이 무너지고 모두가 힘들어 하고 있는 때라서 누구와 밥을 같이 먹는 일이 매우 조심스럽고 망설여지긴 한다. 그러나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따뜻한 전화나 문자 한 통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언제 우리 밥 한번 먹어요."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