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지자체의 혈세 낭비와 관련한 의미 있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2000년부터 시작된 용인경전철 사업이 그것이다. 당시 한국교통연구원이 1일 교통 수요를 13만9천 명으로 예측하면서 추진에 탄력이 붙었다. 하지만 사업은 순탄치 않았다. 2010년 6월에 완공됐으나 용인시가 준공 보고서를 반려하며 국제분쟁으로 번졌다. 우여곡절 끝에 2013년 4월 운행이 개시됐는데 결과마저 처참했다. 이용객이 일평균 9천 명으로 수요 예측량의 6.4%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에 주민들이 용인시장과 관련 공무원, 한국교통연구원을 상대로 1조 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예상대로 1, 2심에선 대부분 기각 판결이 났다. 손해배상 청구 대상이 주민소송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법원이 지난달 29일 원고 일부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지자체장이 사업의 적정성 등에 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추진해 손해를 입혔다면, 주민들이 지자체장이나 관련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번 판결은 ‘무분별한 예산낭비 행태는 나중에라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계기를 마련한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정부 사업도 예외가 돼선 안 될 것이다. 비용편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사업들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예타 면제) 사업은 말할 것도 없다. 문재인 정부의 지난 3년간(올 7월까지) 예타 면제 규모만 88조 원(총 105개 사업)에 육박한다. 이 정도면 현 정부가 그토록 비난해온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을 4번이나 추진한 것과 맞먹는 규모다. 

‘2018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관리센터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18년까지 총 345조7천335억 원 규모에 달하는 789개 사업에 대해 예타를 실시한 결과, 143조 원이 절감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예타가 국책사업비의 41%를 절감하는 ‘세금 보호막’ 역할을 해왔다는 뜻이다. 정치 게임에 혈세가 낭비돼선 안 된다. "대중영합적 사업이 남발될 경우 재정 경직성에 미치는 압박이 크므로 이에 따른 예비타당성조사는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의 여당이 ‘2015년 예비타당성조사 개선 방향’ 보고서에서 주장했던 바로 그 내용을 되새겨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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