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그놈이 갔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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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그놈이 갔습니까?"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 기호일보
  • 승인 2020.08.07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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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2019년 10월 28일 연합뉴스에서 ‘두 대통령의 차이를 말해준다’라는 제하의 두 사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IS의 리더 제거 현장을 상황실에 앉아 모니터로 보고 있는 사진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로부터 8년 전 오바마 전 대통령이 상황실에서 모니터로 빈 라덴의 사살 장면을 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중앙에 앉았고 그의 좌우에 군 장성들과 각료들이 앉아 있었지만, 오바마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모니터의 정중앙에 군 장성이 앉았고, 정작 대통령 자신은 장성의 왼쪽 구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전시 상황에서 최고의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어디에 앉느냐는 것은 사람에 따라 견해가 다를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두 대통령의 개인적인 성향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자기중심적 성향이 강하고, 다른 한 사람은 자기가 권한을 위임해준 장군을 중심에 세우는 성향이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중심적 성향이 강한 사람은 타인을 배려하는 데 서툽니다. 이기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반대로 타인을 배려하는 성향이 강하면 이타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도 이기적인 성향이 더 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며칠 전에 프로배구선수로 활약하던 여자 선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보도를 봤습니다. 언론기사에 따르면 그동안 ‘악플’ 때문에 고통을 받아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악플’로 얼마나 많은 유명인들이 세상을 떠나야 할까요. 꽤 오래전에 한 지식인에 의해 주도된 ‘선플’ 달기 운동이 아직은 우리 사회에 정착되기에는 이른가 봅니다. 

악플을 근본적으로 없앨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실명’을 게재하게 하는 겁니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도 그런 악플을 달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나 이것 역시 논란의 중심에 섭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나의 표현의 자유가 누군가에게는 삶을 포기할 만큼의 고통이 된다면 그 자유를 조금은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유머 테크」에 조선 효종 시절에 재상을 지낸 정태화의 일화가 나옵니다. 그는 동생 정치화와 함께 과거에 급제한 후, 계속 삼대에 걸쳐 재상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정태화는 우암 송시열 선생과 가까운 사이라 만나는 일이 잦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동생 치화는 왠지 우암을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우암이 형을 찾아오면 동생은 형과 함께 있다가도 슬그머니 자기 방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어느 날, 우암이 형을 만나러 오자 동생은 어김없이 자리를 떠났습니다. 한참 후, 우암이 돌아갔으려니 생각하고는 사랑문 앞에서 형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형님, 그놈이 갔습니까?" 형은 무척 난감했을 겁니다. 아직 우암이 방에 있는데 말입니다. 그때 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놈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지만, 어느새 가 버린 모양이구나. 과천의 묘지기인가 하는 그놈은 벌써 가고, 지금은 우암 선생이 와 계시니 어서 들어와서 뵙도록 하여라." 

대단한 배려입니다. 정태화 선생의 배려심이 우암 선생도 살리고 동생도 살렸으니까요. 사실 ‘배려’란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생각의 관점을 ‘나’에게서 ‘너’에게로 바꾸어 생각하기만 하면 되니까요. 나의 표현의 자유가 ‘너’에게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를 생각하는 것이 배려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악플이 아니라 선플을 달기가 더 수월할 겁니다. 전투상황을 실무적으로 진두지휘하는 장성을 정중앙에 앉힐 수 있는 배려심 깊은 사람에게 마음이 가는 것이 저만은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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