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상 인하대학교 아태물류학부 교수
정호상 인하대학교 아태물류학부 교수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지능 등 정보통신기술 발전에 힘입어 디지털 전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디지털 전환의 핵심은 다양한 정보를 한데 모으고, 모아진 정보를 활용해 기존의 전통적 운영 방식과 서비스를 혁신하는 데 있다. 특히 정부를 중심으로 사회기반시설에 디지털 관리체계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나 지자체가 제한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에서 디지털 전환도 우선순위가 필요하다. 사회기반시설 중 디지털 전환으로 인해 이익을 볼 수 있는 다양한 영역이 있겠지만, 어떤 영역이 가장 시급하고 투입 대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경영학자 프레드릭 허츠버그는 조직에서 사람들을 일하게 하는 요인으로 위생요인과 동기요인이 있다고 주장했다. 위생요인은 충족되지 않으면 불만과 문제를 일으키는 요인으로 반드시 충족시켜야 하는 요인을 의미하고, 동기요인은 없어도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으나 제공되는 경우 만족과 동기유발을 일으키는 요인이라고 했다. 또한 소비자들의 품질 인식과 관련해서 품질관리학자 노리아키 카노는 여러 요인 중 충족되지 않더라도 크게 불만족이 없는 요인이 있는 반면, 충족되지 않으면 불만을 일으키는 요인이 있다고 주장했다. 

디지털 전환에 있어서 허츠버그와 카노의 주장을 빗대어 생각해 보면 사회기반시설의 사용자인 주민 관점에서 충족되지 않으면 불만이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일명 위생요인의 해결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하게 다뤄져야 한다. 즉, 주민들의 기본적인 요구사항을 우선 충족시킨 뒤 추가적인 개선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현 시점에서 위생요인에 해당하는 영역은 어디일까? 최근 문제가 되고 있고 주민들의 우려와 불만이 제기되고 있는 상수도 관리 영역부터 고려해 보는 것은 어떨까?

상수도와 같은 실물자산을 대상으로 한 자산관리의 경우 오랜 기간 대규모 사회기반시설들을 구축해 온 서구 국가들을 중심으로 필요성이 대두됐다. 또 해당 국가들의 노력을 바탕으로 2014년에는 ‘ISO55000’이라는 자산관리 국제표준이 발표됐다. 사회기반시설의 유지·보수는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업무 중 하나로 인식된다. 그러나 ‘ISO55000’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개별 자산에 대한 유지·보수 차원이 아니라 해당 자산의 최초 획득(구축), 유지 및 보수, 폐기 등에 이르는 자산의 전체 수명 주기와 조직의 목표, 전략을 연계해야 함을 강조한다. 

‘ISO55000’과 함께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자산관리 참고자료로 유명한 국제 인프라 관리 매뉴얼(IIMM)에 따르면 이해관계자와 사용자의 요구사항을 이해하고 적절한 서비스 수준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함을 언급하고 있으며, 관리 대상 자산의 디지털화와 관리시스템 활용을 강조하고 있다.

호주 퀸즈랜드에서는 2015년 상하수도 네트워크 관련 데이터를 한곳에서 모니터링하고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모든 자산 정보를 쉽게 확보할 뿐 아니라 의사결정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미국은 물연구재단(WRF), 미시간주 수자원관리관청 등이 참여하는 수자원 관리체계의 디지털 전환 프로젝트를 2021년 완료를 목표로 진행 중이다. 이렇듯 해외에서는 ‘ISO55000’ 및 다양한 매뉴얼들을 활용해 상수도 관리를 포함한 자산관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단계로 지자체들의 관심과 참여는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앙정부를 중심으로 디지털 전환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가시화되고 있는 시점에 지자체들이 사회기반시설의 자산관리를 디지털 전환 관련 우선 고려 대상으로 삼아 보는 것은 어떨까? 보건과 안전을 기준으로 주민의 관심이 커지고 있는 상수도 관리의 디지털화가 좋은 시작점이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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