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지난 5일부터 ‘탐정’ 명칭을 사용한 영업이 가능해졌다. 지금까지 관련 업무를 했던 사람들은 ‘민간조사원(PI)’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이제 ‘탐정’이란 이름을 달고 탐정사무소 개업이 가능해진 것이다. 2018년 6월 헌법재판소가 탐정 명칭 사용 가능 결정을 한 데 이어 지난 2월 국회에서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을 개정함으로써 ‘탐정 명칭 사용 금지’ 조항을 삭제한 덕분이다. 탐정업과 탐정 명칭 사용은 1977년 제정된 이 법에 따라 금지됐지만, 이번에 해당 조항이 삭제되면서 6개월 유예기간을 거쳐 5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것이다. 여기까지 온 데에는 헌법소원 심판 청구 등 이를 추진한 사람들의 숨은 노력과 열정이 있었다. 필자도 여러 차례 칼럼을 통해 탐정업 허용을 주장한 바 있었기에 탐정업이 허용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아무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모든 회원국에 이미 탐정제도가 마련된 가운데 우리나라도 뒤늦게 탐정업의 첫발을 뗀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탐정 명칭의 사용만 가능해졌을 뿐이고 이들이 어디까지 수사나 조사를 할 수 있는지를 규정한 구체적 법령이 없어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실제 수사나 재판 중인 사건에 대한 증거 수집은 ‘변호사법’을, 도주 중인 범법자나 가출한 성인의 소재 확인은 ‘개인정보 보호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한편, 탐정업 허용에 따라 탐정사무소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혼란스럽게 될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국내 탐정 관련 자격증은 모두 12개로 지난해 기준 3천689건이 누적 발급됐다. 현재 알려진 탐정 관련 자격증들은 모두 민간 자격증으로 27개 단체에서 발급하고 있다. 조속히 공인탐정제도 도입을 위한 법을 제정함으로써 유능한 탐정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불법행위(사생활 침해 등)를 예방하는 등 합리적으로 관리해 나갈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공인탐정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미국·일본·독일에서는 각각 2만~6만 명의 탐정이 활동 중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공인탐정제도를 도입하면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선진국 입법 사례와 운영 경험을 면밀히 살펴 우리나라에 좋은 제도로 정착시켜야 한다. 

사실 공인탐정제도 도입을 위한 노력은 오래 전부터 시작됐지만 ‘사생활 침해 우려’ 등을 제기하며 변호사 단체에서 끈질기게 반대해 왔다. 경찰청 소관으로 마련됐거나 발의된 법안만 7건에 이르렀다. 1999년 ‘공인탐정에 관한 법률안’이 마련됐으나 15대 국회에서 발의되지 못했다. 이후에도 17대 국회에서 ‘민간조사업법안’, 18대 국회에서 ‘경비업법 일부개정안’, 19대 국회에서 ‘경비업법 전부개정안’·‘민간조사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 20대 국회에서 ‘공인탐정법안’·‘공인탐정 및 공인탐정업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됐으나 모두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인류의 역사는 오래도록 ‘보복(報復)’을 허용해 왔고, ‘복수(復讐)’와 사형(私刑;lynch)이 널리 행해졌다. 그러나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초래하기에 평화로운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마침내 국가가 형사소추권과 형벌권을 독점하는 시스템을 갖추게 됐고, 모든 사적 보복은 불법이 됐다. 그런데 문제는 공권력이 완전무결(完全無缺)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형사소추권을 행사하는 공권력의 집행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수사 과정에서 경찰·검찰이 증거 수집을 소홀히 할 수 있고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다. 진실이 은폐되고 허위가 진실로 호도되기도 한다. 

심지어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기도 한다. 앞으로 공인탐정제도가 도입되면 공권력의 사각지대에서 억울함과 고통을 당해온 수많은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가해자에게 변호사의 도움을 얻게 하듯이 피해자에게 탐정의 도움을 얻게 하는 것이 ‘무기대등(武器對等)의 원칙’에도 실질상 합당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셜록 홈즈’나 ‘코난’ 같이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멋진 탐정들의 활약을 보게 될 날을 기대한다. 공인탐정제도 도입은 더 이상 늦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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