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수 전 인천시교육감권한대행
권진수 전 인천시교육감권한대행

# 다양성과 선택 중심의 교육 내용

다음으로 궁금한 것은 교육의 내용이다. 현행 국민공통 기본과목은 10개이고 누구나 반드시 이수해야만 한다. 과목의 종류뿐만 아니라 그 수준도 교과서와 이수단위 그리고 수업 연한이라는 이름으로 동일하다. 적용 기간도 고등학교 1학년까지 무려 10년이다. 11년 차부터 과목 선택의 여지가 제도적으로는 넓어지지만 학교가 보유한 교원정원과 예산 등 제약으로 학생들의 요구를 충분히 수용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요약하면 우리나라 국민은 감수성이 한창인 10년간을 같은 내용과 같은 수준의 교과목을 강제로(의무적으로) 배워야 한다. 

물론 개인이 선택하는 학습도 있기는 하다. 방과후학교 혹은 자율활동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는 투입 시간이 적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대학입시를 염두에 두고 선택하게 마련이어서 완전한 자율선택과는 거리가 있다. 이 공고한 강제적 학습체제는 과연 COVID-19 후에도 유지될 것인가. 비대면 학습방법 확산은 학습 내용이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이동하는데 어느 정도 기여할 것으로 예상할 수가 있다. 

또한 다양화하고 개인주의화 하는 사회변화는 학습내용의 변화를 급속도로 촉발할지도 모른다. 교육 내용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과제 중 하나가 사교육 문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정부 수립 이후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된 사교육 정책 방향은 사교육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교육도 사교육비도 건재하다. 사교육을 없앨 수 있다는 발상은 허구이다. 정부의 참패다. 사교육비 경감 수단을 사교육 자체를 억제하는 데서 찾은 오류 때문으로 보인다. 

70년간 성공하지 못한 정책을 고수해야 하는가, 아니면 정책 방향을 수정해야 하는가. 공론의 장에 올려 근본부터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아이들의 진정한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면 무슨 상관이랴. 적성에 맞지 않는 백화점식 과목에 투입하기보다는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제도적으로 보장될지 두고 볼 일이다. 또 하나 유념해야 할 것은 학생들이 서로 만나야만 가능하다고 여겨온 인간관계나 협업 등의 교육 내용을 비대면 교육에서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 교육 목적에도 변화 있을 듯

교육의 목적에 변화가 있을 것인지도 궁금하다. 각급 학교의 교육 목적은 ‘홍익인간(弘益人間)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 국가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한다’고 규정한 교육기본법 제2조를 정점으로 학교급에 맞도록 설정된다. 공급자인 국가의 바람이야 당연히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 시민으로서…’등을 겸비케 하는 것이겠지만 수요자인 학생·학부모 요구와 늘 일치한다고 보기 어렵다. 

법령이 표방하는 교육이념이 단기간에 바뀔리야 없겠지만 개인의 관점에서는 적잖은 변화를 예상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필요나 사회 분위기는 학교의 교육과정 속에 빠른 속도로 녹아들어갈 것이다. 다만, 코로나19를 거치며 개인의 안위문제가 이웃과의 협력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체감했으므로 이 점은 집단주의적 성격의 교육 목적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는데 여전히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 교사·학생 간 발전적 관계 기대

이번 원격 교육은 교사들에게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기회가 됐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학습 의지가 없는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건 원격에서는 불가능했을 터, 그래서 만남이 더 절실히 다가왔을 것이다. 이러한 대면욕구는 학생들에게도 일었다. 선생님이 곁에 계셨더라면 좋겠다, 친구와 함께라면 얼마나 좋을까. 원격교육은 학생들에게 오히려 익숙한 방식이라 참여가 교실과는 달랐다는 교사들의 경험담도 있다. 실시간이든 댓글이든 교실보다 풍부한 아이들 반응이 서로 간 이해의 폭을 넓혔다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발견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 이후의 교육에 기대를 걸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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