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전략 도서 확보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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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전략 도서 확보 작전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 기호일보
  • 승인 2020.08.14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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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1950년 8월 낙동강 전선에서 쌍방 긴장의 순간이 연속이던 시점에서, 9·15 인천상륙작전 성공은 9·28 서울수복은 물론 10월 1일 아군이 38선을 넘어 북진을 개시할 만큼 전세를 일거에 바꿔 놓았다.

그러나 중공군 개입을 유발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10월 25일 중공군이 압록강을 도하하면서 전쟁 양상이 또다시 급변했다. 2개월여 뒤인 12월 28일 개성을 점령했고 이후 우리 군은 부득이 1·4후퇴를 단행할 수밖에 없었다.

1월 5일 중공군이 인천시에 진입하자 유엔군은 인천항의 항만시설을 폭파시키고 선박들을 모두 출항시킨 후 대천항에 접안해 병력과 장비를 하역했다.

황해도와 옹진지역 피난민들의 일부는 서해 각 도서지역으로 피란했는데, 한국 해군은 이들을 백령도, 대청도, 연평도, 초도 등으로 수송했다.

그러나 중공군이 개입한 이후에도 해양 통제권은 여전히 유엔 해군과 한국 해군이 장악했다. 한국 해군은 지속적으로 팔미도, 무의도, 영흥도, 덕적도, 연평도 일대 해역(海域)을 봉쇄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당시 인천은 전선이 37도선 인근에 있어 전략상 입지가 크지  않았지만, 이곳에 교두보를 마련해야 할 필요성은 절대적이었다. 이에 2월 10일 덕적도 주둔 한국 해군·해병 1개 중대를 인천 만석동의 인천기계제작소에 상륙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유엔군은 사전 정보를 통해 인천에 주둔 중인 공산군이 소규모였음을 확인했고, 한국군 단독으로도 충분히 장악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소수의 특공대 병력으로 인천을 점령하는 전과를 거뒀다.

1·4후퇴 후 한 달 만의 쾌거였고, 상륙부대는 부천 소사지역까지 진출한 유엔 지상군과 합세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는 3월 15일 서울을 재탈환하는 밑바탕이 됐다.  

이즈음 한국 육군과 유엔군은 반격을 개시해 서부전선에서는 한국 육군 제1사단이 임진강까지 진출하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유엔군은 교동도, 백령도 등 38선 이북에 위치한 주요 연안도서들을 점령할 계획을 검토했고 그 임무를 국군 해병대에 부여했다.

도서를 점령해 방어태세를 갖추고 조직적인 정보활동과 유격활동을 벌여 적 후방의 교란, 적의 기뢰부설 방지, 해군작전을 지원하는 거점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적의 전략을 분산시키고 바다를 통한 중국과 북한과의 연결을 차단한다는 목적도 있었다.

국군 해병대는 즉시 독립 제41중대를 편성해서 1개월 동안 부대 정비와 특수훈련을 거친 후 1951년 4월 2일 오전 먼저 교동도에 기습 상륙했다. 적이 포격을 집중했지만 상륙부대는 큰 손실 없이 교동도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20일간의 교동도 방어임무를 수행한 후, 4월 23일 백령도에 상륙해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백령도는 서해안 해군 작전과 정보활동 중심지로, 북한지역에서 구출해 철수시킨 청년의용군으로 편성된 유격대와 이를 통제하는 육·해군 기관이 활약하고 있었다.

국군 해병대는 다시 5월 7일 대동강 하구의 석도(席島)에 상륙함으로써 정보 수집을 위한 거점을 확보했고 산발적인 유격 활동을 통해 적을 크게 교란시켰다.

석도는 평양의 관문이자 항구도시인 진남포를 마주하고 있는 섬으로, 이의 장악은 해상 보급로를 차단하고 적에게 심리적으로 크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곳이었다. 해병대는 수시로 내륙지역 기습 상륙을 감행, 조직적인 유격전을 펼쳐 적의 작전에 큰 타격을 줬다.

한국전쟁은 발발 후 1년이 지나면서 점차 소강상태에 들어가게 됐고, 1951년 7월 10일 유엔군과 공산군이 판문점에서 정전을 위한 회담을 시작했다.

그러나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전선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계속됐다. 휴전 시까지 약 1개 연대 규모의 병력이 서해 전략도서 확보와 수성 임무를 수행했고, 백령도를 비롯한 서북 5개 도서를 아군 통제하에 두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정전과 동시에 석도를 비롯해서 NLL(북방한계선, Northern Limit Line) 북쪽에 배치 중이던 해병부대는 철수해야만 했다. 대신 백령도와 연평도 그리고 대청도, 소청도를 비롯한 소위 서해 5도에는 해병대 병력이 계속 주둔하면서, 오늘날 ‘귀신 잡는 해병’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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