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이사한 후 새 집에서 첫 여름을 맞이한 뒤 우리 가족은 그동안 겪지 못했던 일에 당황했다. 12층인 우리집 창문마다 모기떼가 새카맣게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미세방충망이 아닌 탓에 창문을 열어두면 방충망이 설치돼 있음에도 불구, 어느 틈으론가 모기들이 집 안으로 들어와 아직 두 돌도 채 되지 않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빼놓지 않고 괴롭혔다.

이웃의 다른 집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모기의 습격에 괴로워했다. 아파트 단지 안을 흐르는 우시장천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의 원천리천 등에서 번식한 모기가 아닐까 추측했다. 그렇지만, 이처럼 많은 모기떼가 창문에 붙어 있는 모습은 소위 시골에서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모기가 싫어한다는 특정 주파수도 틀어보고, 모기약도 뿌려보고, 모기퇴치제도 발라봤지만 허사였다. 이 때문에 우리집은 이미 지난 5월 중순께부터 에어컨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토록 기승을 부리던 모기들이 갑자기 사라졌다. 아마도 장마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유례 없이 50여 일간 지속되며 수 많은 비를 뿌려댄 이번 장마로 인해 모기의 알과 유충들이 모두 쓸려갔기 때문일 것이다. 수 개월간 사람들을 괴롭혔던 모기들은 세찬 빗속에서 확실한 방법으로 자취를 감췄다. 모기가 두려워 창문을 열지 못했던 우리집은 이제야 공기청정기를 끈 채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할 수 있게 됐다. 미세먼지와 코로나19 및 장마로 인해 집 밖을 자주 나가지 못했던 우리 아이는 열린 창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즐거워 하고 있다.

그런데 어젯밤 종아리가 간지러워 살펴보니, 아뿔싸! 모기에 한 방 물렸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잠시 1층에 다녀오던 길에서 물린 것 같았다. 그 많던 모기가 거센 장마로 인해 바람에 날려가거나 물에 쓸려가던 순간, 새로운 살 길을 찾기 위해 건물 내부로 서식처를 옮긴 녀석들이 살아남은 것이리라. 아마도 이 녀석들은 살아남기 힘든 상황 속에서 내린 순간의 선택으로 스스로의 생명을 건진 것은 물론, 번식에도 성공할 것이다.

인간 사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떤 조직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정권자가 빠른 상황 판단으로 최선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스스로는 심사숙고라고 생각하겠지만, 결정이 늦어질 수록 살아남을 확률은 줄어든다. 또한 살아남고자 한다면, 마치 거센 비가 모기들을 쓸어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든 것처럼, 확실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자칫 큰 변화를 두려워 해 소극적인 결정을 내린다면, 조직의 변화를 기대하기는커녕 살아남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질지 모른다.

<전승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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