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우<인천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김준우<인천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8월 15일 광복절은 독립기념일이다.  일본 치세에서 해방된 날 즉 일본이 미국에 항복하던 날을 독립기념일로 기념하고 있다. 마땅히 이날의 의미를 되새겨야 하지만 더욱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8월 29일 나라가 망한 국치(國恥)일이 아닌가 싶다. 독립보다 국치가 먼저 있기 때문이다. 

 해방은 증오의 대상을 남긴다. 해방은 어떤 굴욕이나 치욕에서 해방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방일은 그것을 떠올릴 수밖에 없고 그것에 분노와 증오를 갖게 될 수밖에 없다. 반면 국치의 경우는 반성을 의미한다. 나라를 빼앗겼다면 뺏긴 것에 대해 통렬한 반성을 떠올릴 것이고 값진 교훈을 얻게 된다. 중국 춘추시대 오나라의 와신상담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반면교사로 다시 이러한 치욕을 갖지 않도록 눈을 부릅뜰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려 때 몽골 원(元)나라 치하에서 30년을 속국으로 수많은 우리 백성을 노예로 바쳤다. 원은 자기들 옷을 입게 하고 자기들 언어를 쓰게 하고 자기 나라처럼 행세했다. 백성은 수탈당하는데 조정은 강화에서 팔만대장경 파면서 세월을 보냈다. 이후 조선 인조는 후금의 황제 홍타이치 다리 밑에 머리를 아홉 번 찍는 수모를 겪은 후 가혹한 청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때도 많은 백성을 바쳤는데 그때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인 ‘화냥년’이 이때 나온 말이다. 이 치욕의 공통점은 세상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나라를 빼앗겼다는 것이다. 이후 고려 공민왕이 독립운동을 해서 나라를 되찾았지만 조선은 이때 맺은 청과의 군신관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조선말 당시는 망하기 직전이었다. 고종과 민비의 부패와 무능 그리고 당파의 권력투쟁에 매몰된 나라는 이미 거덜났고, 더욱이 제국시대라는 세상의 흐름을 보지 못하고 주자학의 고루한 세계에 갇혀 있다 결국 일본에 나라를 바친 꼴이 됐다. 외국의 교훈은 고사하고 국내 역사에서도 교훈을 얻지 못한 탓이다. 망한 후에도 변변한 저항이 없었다.  만주의 독립군과 전국적인 3·1운동이 있었다고 하지만 역사 흐름을 바꿀 만한 인물도 힘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해방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각별하다. 사실 우리 독립은 미국이 일본에 원자탄으로 항복을 받아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즉 쟁취한 것이 아니라 어는 날 갑자기 얻어진 선물이라는 것이다.  당시 우리는 일본 속국으로서 모든 국내 자원이 일본 태평양 전쟁의 총력전에 동원됐다. 어떤 이는 끌려가고 어떤 이는 자원해서 갔다.  큰 돈을 줬기 때문이다. 그러다 해방을 맞았고 이후 거의 70년이 지난 그때의 일이 억울하다고 일본에 배상을 요구하고 분노하고 저주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지 않았다면 당연히 해방도 없었고 중국처럼 승전국에 서서 일본에 전리품을 요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빼앗긴 것을 기억하고 분노할 것이 아니라 빼앗긴 것에 대해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노가 앞서는 이유는 분노는 쉽고 반성은 괴롭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의 과도한 집착은 병을 유발한다. 이제 일본 치하를 경험한 사람도 드물어 지고 기억도 희미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수시로 다시 끄집어 내어 증오하고 분노한다. 사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사실인지도 분명하지 않은 일이 부지기수이다.  세월호 때 수많은 선동가들이 난무한 것처럼 여기 일본치하의 일에서도 선동가가 가득하다. 며칠 전 불거진 정의연 사태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완용이나 이승만에 대한 인물 평가나 위안부나 정신대 그리고 의용군 등에 대한 사실이 최근에 학자들에 의해 재조명되고 있는 것은 역사를 객관적으로 본다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기념일의 기념이란 의미를 되새기는 일이다. 우리는 해방의 기념에 앞서 치욕일을 기억하고 되새기고 반성해 또다시 이런 치욕이 일어나지 않도록 뼈 아픈 교훈을 후대에게 물려줘야 한다.  일본이 우리에게 한 일에 대한 증오는 교훈이 아니다. 아무리 위안부나 의용군의 만행을 들춰낸들 이것은 교훈이 되지 못한다. 이것은 일본에 대한 병적 증오와 또 다른 정신적 구속을 낳게 된다.  

 진정한 국가의 해방은 그들로부터 주권을 인정받고 있음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것은 분노와 증오가 아니라 떳떳하고 당당하게 그들과 마주하는 것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왜 우리가 그때 망했는지 철저히 공부해 이를 후대의 교훈으로 남겨야 한다. 아직도 그들에게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몸은 그들로부터 자유로울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아직도 그들 속에 갇혀 있는 것이다. 즉 해방이 해방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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