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석<도시계획박사>
김선석<도시계획박사>

"아~ 신라의 밤이여. 불국사의 종소리 들리어온다. 지나가는 나그네야 걸음을 멈추어라…. " 이 노래가사는 故 현인 선생의 ‘신라의 달밤’입니다. 대중가요의 하나인 트로트는 한때 ‘한물간 노래’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요즘 트로트 열풍이 다시 불고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한 20대 가수가 부르는 모습을 보니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조회수가 무려 200만을 훌쩍 넘었더군요. 이처럼 신세대 가수들은 다채로운 목소리로 옛 전통을 수용하면서 전 국민의 귀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트로트의 태생은 영국과 미국 등 서양의 폭스 트로트(fox trot)입니다. 이것이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정착했습니다. 트로트(trot)의 뜻은 영어로 ‘빠르게 걷다, 바쁜 걸음으로 뛰다’라는 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현대인들은 트로트의 의미처럼 시간에 쫓기듯 바쁜 현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변화무쌍한 생활 속에서 오롯이 삶에 집중할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그 해결 방법의 한 가지가 우리 몸의 생체리듬에 맞춰 일상의 리듬을 찾는 것입니다.

 여기서 생체리듬이란 하루 24시간을 주기로 체온과 호르몬 분비 등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체계를 말합니다. ‘체계’를 통해 일의 능률을 높이고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일정 계획, 시간 관리, 우선순위 등을 리듬에 적절히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몸은 아침에 해가 뜨면 심장 박동 수가 늘고 체온을 상승시켜 일의 수행을 원활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파도에 맞서는 것보다 파도를 타는 것이 수월하듯, 해가 떠오를 때 잠에서 깨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드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생체리듬이 다를 수는 있지만, 이러한 일상생활이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가장 이상적인 생체리듬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볼 만한 것이 있습니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좋을 것인가에 대한 ‘시간계획’입니다. 아침 1시간과 저녁 1시간은 양적으로 같습니다. 하지만 좀 깊게 생각해 보면 엄연히 다릅니다. 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하루 가운데 오전 시간은 정신적인 일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또한 오전에는 개인의 의지가 강해 어떤 일을 마음먹고 할 때 훨씬 잘 해냅니다. 이유는 집중이 잘 돼 하는 일에 속도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생각을 깊게 하는 분야일수록 효과적입니다. 그렇다면 오후에는 어떤 활동이 좋을까요? 정신적인 일보다는 육체적인 활동이나 습관적으로 하는 일을 계획하는 것이 낫습니다. 「1Q84」, 「기사단장 죽이기」 등의 소설로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정신적인 일이라 할 수 있는 글을 오전에 쓰고 오후에는 운동 등을 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생체리듬에 적합한 활동은 똑같은 노력으로도 자신의 성과를 더 높이고 경쟁력을 발휘하는데 매우 유용한 방법입니다. 

 하버드대 정신과 스리니 필레이 교수는 그가 쓴 책 「멍 때리기 기적」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경쟁에서 밀려나거나, 상황을 헤쳐 나가기 버겁거나, 삶의 바닥에 떨어졌다고 느낄 때는 삶의 리듬을 찾아야 한다"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때 필요한 역량이 ‘정체성(正體性)’이라고 하며 재즈 음악가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재즈 음악가가 최고의 인지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기 리듬에서 벗어났다가도 다시 돌아올 수 있어야 하며, 사람들이 붐비는 인도를 걸으면서도 앞에서 다가오는 보행자와 부딪치지 않고 자동적으로 움직여 몸을 피할 수 있듯 우리의 인지 리듬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반응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을 이끌어가는 신세대가 구세대의 리듬을 그저 옛 것으로 치부하고 고유의 리듬을 저버렸다면 트로트의 흥행을 이끌긴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처럼 트로트 열풍은 각자의 음색을 살리면서도 고유의 리듬을 잊지 않아서입니다. 트로트가 케케묵은 옛 노래에서 벗어나 황금기를 맞이한 지금, 우리도 생체리듬을 잊지 않고 자신만의 삶의 리듬을 찾아갈 때입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