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 비, 이효리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혼성 그룹 싹쓰리로 뭉쳤다.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인물들인 만큼 이들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싹쓰리는 자신의 20대 청춘이 숨쉬던 1990년대 중·후반의 분위기를 화려하고 낭만적인 레트로 감성으로 전했다. 1990년대 대한민국은 IMF가 닥치기 전까지 문화·제적으로 가장 풍족했고, 자유로웠으며, 개성적인 시기였다. 그렇다면 1980년대는 어땠을까? 1980년대는 1990년대와는 여러모로 결이 다른 시대였다. 1980년대 초반을 담은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당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 낸 작품이다. 제목인 꼬방동네는 판자촌을 뜻하는 말로,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를 말한다.

화상 상처 때문에 일년 내내 한쪽 손에 검은 장갑을 끼고 다녀 이름보다는 검은 장갑으로 불리는 여자 명숙은 꼬방동네의 소문난 억척 어멈이다. 반항적인 아들 준일과 술에 절어 사는 남편 태섭 때문에 속상하지 않은 날이 없지만, 그 와중에도 동네 구멍가게를 인수할 만큼 생활력이 강하다. 이제 명숙의 작은 소망은 큰 사건·사고 없이 그저 무탈하게 사는 것뿐이다.

하나 그런 명숙의 바람은 택시기사 주석의 등장으로 물거품이 된다. 명숙의 전남편이자 준일의 친부인 주석은 소매치기 전과로 교도소를 들락거린 전력이 있다. 뒤늦게 철이 들어 가정을 꾸리러 돌아왔지만 아내에게는 이미 새 가정이 있었다. 반면 명숙의 현 남편 태섭은 실수로 사람을 죽인 일이 있어 공소시효가 만료될 10여 일 뒤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처지다. 오손도손 평범하게 살고 싶은 명숙의 삶에 태클을 거는 세 남자. 명숙의 삶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가 없다.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은 1980년대 초반 서울 도심의 빈민촌을 배경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머지않아 다가올 도시개발의 전운이 느껴지는 판자촌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웃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은 이 작품은 1980년대를 그린 한국 영화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명작이다.

각자 기구한 사연을 품고 살아가는 미워할 수 없는 이웃들이 모인, 사람 냄새로 가득한 ‘꼬방동네 사람들’에는 삶의 진한 희로애락이 그대로 녹아 있다. 이는 원작 소설이 주는 보편적인 이야기의 힘과 함께 배우들의 매력도 한몫하고 있는데, 강인한 엄마 역의 김보연과 뒤늦게 철든 남편인 안성기, 자신의 죗값을 당당히 받는 김희라 등 주요 배우들의 연기가 긴 여운을 남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꼬방동네가 보여 주는 1980년대는 단지 가난했던 지난날의 한 페이지가 아닌 부모님 세대의 자화상이 깊은 주름만큼이나 움푹 패어 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