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삼국지 리더십연구소 소장/역사소설가>
나채훈<삼국지 리더십연구소 소장/역사소설가>

‘검·언 유착’ 의혹, 권력기관 개혁 등에 얹혀 윤석열 검찰총장과 한동훈 검사장을 손봐야 한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 안 했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 권경애 변호사는 "매주 대통령 주재 회의에 참석하는 방송을 관장하는 분이 전화통화에서 윤 총장과 한 검사장을 꼭 쫓아내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고 페이스 북에 올렸고, 방통위원장은 "일반적인 검찰의 강압적 수사 행태를 얘기했다"라며 부정한 것.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않다면 심각한 국기문란이라 아니할 수 없다. 모든 권력은 시민을 위해 존재하고 시민의 통제를 받아야 하며 오로지 시민을 위해서만 행해져야 한다는 원칙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만을 위한 권력기관에서 벗어나 국민의 기관으로 거듭나야 함에도 민주주의 일반 원리가 심히 훼손되고 있다는 의구심을 키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1950년 말에 중국의 거물급 역사가들인 곽말약(郭沫若), 여금과(呂今果), 오택(吳澤)등이 ‘조조가 왜 공융을 죽였는가’하는 논쟁에서 색다른 주장을 내놓았다.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서는 소설 「삼국연」의 제40회에 나오는 조조의 남정에 있어 공융의 일갈 때문이었다는 게 정설이었기에 관심을 끌었다. 공융은 대군을 일으켜 남쪽 정벌로 천하통일하려는 조조에게 ‘지극히 어질지 못한 사람이 어진 이를 쳐부수겠다니 이기고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라고 비아냥댔다. 이를 들은 치려가 밀고했고 결국에 조조는 공융과 그 일족을 모조리 죽이고 말았다. 

 최고권력자를 매도(?)한 죗값이었다. 

 그런데 「후한서」를 쓴 범엽은 원래부터 조조와 공융은 물과 기름 같은 존재였다고 했다. 

 첫째로 원소 진영을 정벌했을 때 조비가 원소의 며느리를 차지하자 조조가 애석해하며 "이번 원정은 비를 위한 일이 되고 말았다"면서 조조 부자가 미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암투를 벌였다는 투로 공융이 비아냥거린 일도 있고, 조조가 곡물부족을 이유로 금주령을 내리자 성범죄를 없애려 남성들의 생식기를 거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조롱하는 글을 썼다는 등의 이유를 대기도 했다. 

 한편 「한기」를 펴낸 장번이란 사람은 "공융은 선천적으로 시원스러운 성격인데다 평소에도 자신의 기분을 그대로 노출시켰기에 조조를 얕보는 태도가 드러나곤 했다. 조조는 겉으로 관대하게 그를 대했으나 못마땅하게 여겼다"면서 둘 사이에 성격적인 불협화음이 결국 화를 불렀다고 했다. 이런 견해에 대해 곽, 여, 오 등은 원래 조조는 공융을 싫어했으나 허도 정권의 정통성을 위해 명문거족들의 자제를 기용했고, 공융 같은 인물에게도 장작대감이란 벼슬을 주어 우대했으나 원소를 쳐부순 이후 ‘풍속을 정돈하고 부화교회(浮華交會: 유한계급의 사치스러운 교제)의 헛됨을 타파한다’는 개혁정책에 대해 공융으로 대표되는 명문거족, 지주와 지식인들이 탐탁지 않게 여기자 칼을 뽑아 들었다고 봤던 것이다. 

 물론 조조와 공융 사이에 성격상 부조화의 이유도 있었겠고, 공융의 방자한 말(?) 때문이었을 수도 있으나 핵심은 새로운 풍토의 세상을 만들고 싶어하는 조조에게 기득권 내지는 언변으로 한몫하는 식자들의 설왕설래가 극히 불만스러웠고 그 대표격인 공융이 당했다는 점이다. 

 공융을 죽이기 이전과 이후의 조조 위상은 크게 나눠 볼 수 있다. 원소 징벌의 전후로 살펴보면 더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즉, 원소 징벌 이전의 조조는 천하 군웅들 사이에서 황제를 끼고 호령했으나 군벌 중 하나일 뿐이지 판세를 좌지우지하는 형편이 아니었다. 남쪽 지방에 유표와 손권이 있었고, 자신에게 적대적인 유비와 서쪽의 유장, 장노, 북쪽에는 최대의 군벌인 원소 등이 버티고 있었다. 까딱하면 졸지에 패망의 구렁텅이로 몰락할 수 있는 처지였다. 하나 원소 징벌 이후 조조는 천하를 주도하는 실권자가 돼 있었다. 중원 일대와 북쪽 요동까지 점령한 최대 실력자. 그때부터는 거칠 게 없는 절대 권력자가 된 것이다. 

 촛불혁명이 일어났을 때와 이제 절대적인 힘을 소유한 정부·여당, 물론 봉건군주 시대와 다르겠으나 권력의 힘이 작동하는 원리와 행태는 크게 달라져 보이지 않는 걸 어쩌랴. 지금까지 말은 무성했으나 제대로 된 권력기관 개혁이 없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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