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옥엽(인천여성사연구소 대표)
강옥엽(인천여성사연구소 대표)

최근 2020년 광복 75주년을 기념해 여성단체에서 75인의 항일 여성독립운동가를 선정하고 기억하자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어 여성의 독립운동과 광복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특히, 항일 여성독립운동가 75인 중에는 곽낙원, 김란사, 김조이, 최선화 등 인천과 관련된 인물이 있어 역사 속 인천 여성 인물의 활동을 되돌아보게 한다.

 1992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던 독립운동가 김구(金九)의 어머니 곽낙원(1859∼1939)은 두 차례 인천과 인연을 맺었는데, 첫 번째는 김구가 국모보수(國母報讐)를 위해 치하포에서 일본인을 살해하고 인천감리서 감옥에 수감돼 있을 때, 인천항 객줏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구명 운동과 면회로 아들을 격려하고 후원했다.

 두 번째는 이후 김구가 독립운동 활동 중 105인 사건에 연루돼 경성감옥에 수감됐다가 1914년 인천 분감으로 이송되면서였다. 임시정부 시절 여러 곳을 옮겨 다니는 과정에서도 아들의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했고, 후일 손자를 군관학교에 입학시키고 중앙군관학교 낙양분교 청년 20명을 돌보다가 중국 중경(重慶)에서 사망했다. 경교장에 세웠던 곽낙원 동상이 인천대공원으로 옮겨 왔던 것은 이런 인천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2008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던 김조이(1904∼?)는 이른바 함남공청사건으로 1934년에 검거돼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출소 후 조봉암과 결혼해 인천에 정착하면서 인연을 맺게 됐다. 결혼 전 3·1운동에 영향 받아 조선공산당에 가입하고 모스크바의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도 2년 동안 유학을 다녀왔다. 1925년에 경성여자청년동맹을 조직해 박헌영의 부인인 주세죽, 변호사 허헌의 딸이자 임원근의 부인인 허정숙과 함께 경성 지역의 좌파 여성 운동을 이끄는 중심 인물이었다. 6·25전쟁 중 납북돼 이후의 행적은 알 수가 없다. 

 인천 감리(1899, 1902~1905)를 지낸 하상기(河相驥)의 부인으로 인천과 인연을 맺은 김란사(1868∼1919)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영어 이름이 Nancy였다. 이화학당에 다니다 1896년 미국 오하이오 웨슬리언대학에 유학해 1900년 문학사 학위를 취득한 최초의 여성 학사학위 취득자이자, 첫 자비 유학생으로 알려져 있다. 1906년부터 이화학당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여성계 지도자로 활약했다. 1919년 파리평화회의에 우리나라 여성 대표로 참석하려는 계획이 일본 경찰에 알려져 중국으로 망명했다가 북경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던 인천 출신 최선화(1911~2003)는 1931년 이화여전을 졸업하고 모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1936년 상해로 건너가 흥사단에서 활동했다. 이 무렵 임시정부 재무차장이던 애국지사 양우조(楊宇朝)와 결혼했다. 1940년 교포 부인들을 단합시켜 한국혁명여성동맹 결성 준비위원으로, 또 1943년 2월에는 임시정부를 중경으로 옮겨가 애국부인회 재건운동에 주력, 재건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여성과 청소년 계몽과 교육에 열성을 다했다. 

 미추홀로부터 2030여 년, 인천정명(定名)600여 년, 그리고 인천 개항 130여 년의 인천 역사는 한마디로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었다. 그 과정 속에서 인천은 개척지이자 선구지 공간이었고, 인천 여성의 역사도 이러한 개척자적인 삶과 무관하지 않다. 

 다만, 인천 여성 인물의 다양한 활동 사례는 남녀차별이 형식적으로나마 극복되기 시작한 근대 이후에나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사회운동 및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여성들은 사회운동이 곧 독립운동이었고, 동시에 여성운동이기도 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어려움을 극복해 갔던 그 정신이 오늘을 사는 우리 인천 여성의 근원이자 후세에 물려줄 정신적 자산이 아닌가 생각된다. 무엇보다 여성인물에 대한 자료 발굴은 인천여성사 연구의 최우선적 과제이다. 그런 시각에서, 인천 여성의 삶과 그 흔적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의미를 찾는 작업이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시작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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