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걸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남동걸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아빠! 우리 역사책에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

며칠 전 올해 대학에 입학한 아들의 뜬금없는 말이었다.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니,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나온 말이라고 했다. 이야기인 즉, 그토록 동경하던 대학생이 됐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학교에는 제대로 가보지도 못한 채 한 학기를 마친 자신들의 상황이 훗날 역사책에 실릴 정도의 특이한 상황이라는 것이 요지였다. 대학 신입생으로서 대학의 낭만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의 안타까움이 아들의 말에서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고등학교 때까지 힘든 상황에 대한 보상이 대학생이 되기만 하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지만, 갑자기 등장한 코로나19라는 전염병 때문에 모든 것이 어그러진 20학번 대학 신입생의 모습이 아들의 말에 투영됐다. 

작년 이맘때, 즉 아들이 고3 여름방학 때였다. 저녁 느지막하게 지친 몸으로 집에 온 아들에게 ‘조금만 참고 공부해 대학을 가면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조의 몇 마디 위로의 말을 건넸었다. 그런 후 대학에 간다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아들은 생기 도는 목소리로 ‘자유롭게 술집 드나들기’, ‘여자 친구 사귀기’, ‘축제에 참여하기’, ‘MT 가기’ 등 몇 가지를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아들의 희망 사항은 30년도 훨씬 전에 대학 신입생을 경험했던 필자의 고등학생 시절 희망했던 그것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웃음이 나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대학생도 되기 전에 벌써 대학 생활을 상상하고 있었던 듯 술술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측은함을 느끼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고등학생과 대학생의 차이가 상당하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의 고등학생들은 대학 입시 준비에 치여 자유로운 생활을 누린다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려운 상황이다. 학교 수업에, 학원 수강에, 자율학습에 눈코 뜰 새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어려운 수험 생활을 묵묵히 인내하는 것은 원하는 대학으로의 진학이라는 절대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면 고등학생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자유를 누릴 수가 있다. 공부에 대한 부담감이나 부모님의 간섭은 눈에 띄게 줄고, 성인으로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상당수 늘어나기 때문이다.

필자는 처음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 이래 20여 년간 거의 매년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맡아 진행하고 있어 대학 신입생에 대한 이해도가 비교적 많은 편이다. 필자가 파악하기로 신입생들이 대학 생활을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다. 입학식을 하기 전에 실시하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은 대학 생활의 노하우를 얻는 동시에 학과 동기들과 선배들을 사귀게 되는 소중한 모임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입학을 하게 되면 4월 중에 학과나 동아리 단합의 장인 MT가 뒤를 잇는다. 그 사이 발 빠른 친구들은 친구나 선배 주선으로 미팅이나 소개팅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다리는 대학의 낭만은 5월에 열리는 축제이다. 축제는 대학 생활의 꽃이라고 할 정도로 대학 낭만의 정점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와 같은 시험에 대한 부담이 없지는 않으나, 대부분 신입생들은 고등학교 시절에는 별로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만끽하며 한 학기를 보낸다. 

그러나 올해 입학한 신입생들은 이러한 대학의 낭만을 전혀 누리지 못했다. ‘코로나19’라는 전염병 창궐로 인해 오리엔테이션은 물론 입학식조차 치르지 못했다. 물론 MT나 축제도 열리지 못했다. 심지어는 전면 온라인 수업으로 인해 학교에조차 오지 못한 상황이 연속됐다. 부푼 마음으로 입학한 대학에서 전대미문의 상황을 겪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신입생만이 아니라 교수, 선배 등 학교 구성원들도 모두 동등하게 겪고 있긴 하다. 20년 이상 강의를 하고 있는 필자도 이번만큼 어려운 학기가 없었다. 그러나 기대했던 첫 대학 생활을 하나도 누리지 못한 20학번 신입생에 비할 수 있으랴. 과연 향후 역사책에 실릴 만한 학번이다. "20학번 신입생들이여! 긍정적으로 역사책에 실릴 수 있도록 의연하게 현 상황을 헤쳐 나갈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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