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고 색다른 영화를 마주했을 때 대중의 첫 번째 반응은 낯섦이다. 새로운 시도라 하더라도 난생 처음 접하는 소재와 스타일이라면 신선함 보다는 이질적인 느낌을 먼저 받는다. 그런 이유로 이명세 감독의 빛나는 데뷔작 ‘개그맨(1989)’은 당시 철저히 외면 받다 뒤늦게 진가가 알려진 작품이다. 1980년대 한국영화는 리얼리즘 계보 속에서 민감한 사회적 이슈를 비판적으로 다루던 시기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개봉한 영화 ‘개그맨’은 말 그대로 ‘갑툭튀’였다. 꿈을 쫓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으로 그린 이 영화는 시각적 스타일마저 양식적이었다. 시대를 앞선 새로움으로 당시엔 외면 받았으나 세월이 더 할수록 가치를 인정받는 영화 ‘개그맨’을 만나보자

무단으로 촬영장에 들어와 잡상인 취급을 받는 한 남성은 ‘당신 누구야?’라는 질문에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 이렇게 말한다. 

"언제나 여러분의 사랑 속에 쏙쏙 자라는 귀염둥이 개그맨 이종세입니다." 

3류 카바레에서 재미없는 말장난을 일삼는 개그맨 이종세는 감독 지망생이다. 최근 사나리오를 완성해 제작사에 돌렸지만 반응이 없자, 직접제작 현장을 찾아간 것이다. 이종세는 촬영 중인 영화의 테마가 진부하다고 핀잔을 주는가 하면, 자신의 영화는 4천만 국민이 모두 보는 위대한 작품이 될 거라는 근거 없는 자부심을 내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누구도 자칭 천재 이종세를 알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모두가 외면할 때, 꼬박꼬박 ‘감독님’이라는 호칭으로 깍듯하게 대하는 이가 있었으니 이발사 문도석이었다. 배우를 동경하던 이발소 사장은 주인공 제안에 들떠 가게를 팔고 쌍꺼풀 수술까지 하는 열의를 보이며 영화 제작에 합류한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오선영도 여배우로 낙점되어 이들과 한 배를 탄다.

그러나 문제는 제작비였다. 자금을 마련해 천재적 역량을 유감없이 펼치고 싶었던 종세는 결국 강도행각을 벌인다. 그러나 어설픈 도둑질과 뜻하지 않는 살인으로 3인조는 지명수배자로 전락한다. 좁혀진 포위망 속에 내부 분열마저 심화되자 이성을 잃은 문도석은 이종세에게 총을 겨눈다.

영화 ‘개그맨’은 전체적으로 엉뚱하고 유머러스한 분위기 속에 범죄드라마가 혼용된 독특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문도석의 이발소에서 잠들었던 이종세가 눈을 뜨면서 끝이 난다. 즉 모든 것이 개그맨이자 감독 지망생인 이종세의 꿈이었던 것이다. 이는 쉽게 잡히지 않는 꿈에 대한 보편적인 감성을 이명세 감독 특유의 재치 있는 유머로 풀어낸 첫 번째 작품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이 영화는 ‘내일을 향해 쏴라(1969)’, ‘코미디의 왕(1982)’, 배우 찰리 채플린, 잭 니콜슨, 박노식 등 다양한 영화와 영화인을 오마주하거나 차용하는 방식으로 영화에 대한 영화를 완성시켰다. 극중 이종세는 명작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며 현실을 개탄하는데 30년이 지난 오늘, 우리 곁에는 영화 ‘개그맨’이 고전이 되어 세월이 흘러도 바래지 않을 빛을 발하고 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