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사람은 자식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새끼를 낳으면 제주도로 보내라’는 속언이 오래전부터 전해져 왔다. 피임이 보편화되기 이전에 한 가정에 자식을 5~10명씩 많이 낳던 시절에는 부모들이 모든 자식을 뒷받침할 수 없었기에 ‘능력과 의욕이 있는’ 자식 한둘만을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냈었다. 요즘말로 얘기하자면 소위 ‘선택과 집중(Choice and Concentration)’ 전략을 실천한 것이다. 

농사일을 하는 등 고향에 머물렀던 다른 자식들도 꿈을 찾아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몰려들었다. 1950년대 이후 그런 추세가 더욱 뚜렷해졌다. 서울은 자꾸만 과밀해졌고 마침내 경기·인천까지도 전국에서 몰려드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우리가 ‘수도권’이라 부르는 광역도시권이 형성된 것이다. 밀집화된 수도권엔 필연적으로 주거난, 교통난 등 많은 문제점이 생겨났지만 도시화가 효과와 효율 측면에서 큰 장점들을 발휘한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인재와 물자가 한곳에 모임으로써 ‘시너지 효과(Synergy effect)’를 거둔 것이다. 수도권에 몰려든 ‘똑똑하고 활기찬’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경쟁함으로써 우리나라의 경제·사회 발전을 이끌어 왔다. 영국 등 유럽의 국가들에서도 산업이 발전하면서 도시로 인구들이 집중하던 시대가 있었다. 특히 유럽의 중세 도시들은 길드(Guild)를 중심으로 치안과 사법, 상업행위와 같은 일련의 권한을 특허장을 통해 보장받는 형식으로 자치권을 보장받아 발달했는데, 이러한 도시의 자유는 영국의 명예혁명, 프랑스의 대혁명 등을 통해 개개인 모두에게 적용되는 기본권인 시민자유로 그 개념이 확장됐다고 한다. 

"도시의 공기는 자유롭게 한다(Stadtluft macht frei)"는 말이 그 의미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이처럼 도시의 형성과 발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회발전의 필연적 결과이자 견인차였다. 전통적 농업국가였던 우리나라가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룩한 것도 수도권의 발전에 힘입은 바가 매우 크다. 그런데, 수도권의 발전이 초래한 대표적인 부작용 중 하나가 부동산 가격 급등이었다. 특히 서울의 강남지역은 직장·주거의 편의 외에도 자녀 교육에 유리하다는 측면에서 선호도가 높은 지역이 됐다. 

강남지역 아파트 가격은 지나치게 폭등했고 다른 지역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마저 생겨났다. 정부는 ‘강남 핀셋규제’라는 처방을 들고 나왔는데, 이는 곧 인접지역 아파트 가격의 상승이라는 ‘풍선효과’로 이어졌고 마침내는 의정부·양주 등 일부 지역만을 제외하고 모든 수도권 지역이 규제지역으로 묶였다. 대출규제, 세금 인상 등 주로 수요규제에 맞췄다가 비판이 일자 ‘공급은 충분하다’는 종전 입장을 바꿔 서울지역 내 공급 확대 정책까지도 내놨다. 또한 임대차3법 등 부동산관련 법안들을 야당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졸속으로 국회를 통과시켰다(임대 사업자들에 대한 종전 지원들을 소급적으로 폐지·제약한 데 대해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이 일자 홍남기 부총리가 사실상 정책 실패를 인정하기까지 했다). 

이에 더해 정부는 뜬금없이 ‘행정수도 이전’이란 오래전에 잊혀졌던 카드까지 내밀었다. 국민은 불안하다. 부동산가격 안정이라는 정책 방향에 동의하면서도 ‘강남 핀셋규제’에서 출발한 시장 무시적인 다발적 정책들의 효과가 도대체 어디까지 미치게 될지 불확실해서다. 이미 세간에는 ‘전세가격 급등’, ‘똘똘한 한 채 선호에 따른 지방 아파트 가격 폭락’ 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사전에 충분한 고려 없이 ‘행정수도 이전’ 문제까지 꺼내는 것은 너무 당혹스럽다. 

어떤 정책을 휙 내놨다가 여론이 악화되면 땜질식 처방을 반복하는 ‘무면허 운전자’ 같은 불안감을 국민에게 안겨줘서는 안 된다. 정부는 수도권 집중과 과밀화가 초래하는 문제점과 부작용을 잘 해결해 나가면서 계획성 있게 수도권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수도권의 경쟁력이 곧 우리나라 경쟁력의 주요 원천이기 때문이다. 수도권정비계획법의 합리적 개정 등을 통해 규제 일변도의 수도권 정책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