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방십우(文房十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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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방십우(文房十友)
최계철 인천행정동우회 기획정책분과위원장
  • 기호일보
  • 승인 2020.09.01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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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계철 인천행정동우회 기획정책분과위원장
최계철 인천행정동우회 기획정책분과위원장

우리의 선비는 의(義)와 불의(不義)를 바로 볼 줄 아는 지혜와 용기를 가진 참인간이었다. 의(義)를 위해서는 뜻을 굽히지 않았으며, 명리를 초개와 같이 여기고 초연히 자기를 기르는 것을 종사로 삼았다. 

이러한 선비들이 학문에 정진하는 곳이 사랑방, 즉 선비의 거실이다. 선비의 거실을 흔히 서재(書齋), 청재(淸齋), 산재(山齋)라 일컫는데 재(齋)는 방이나 집을 뜻하기도 하지만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다, 공경하고 삼가다, 엄숙하다는 뜻도 포함돼 있다. 그러므로 책만을 읽는 공간이 아니라 마음을 닦아 맑게 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곧은 품성을 기렸던 선비들이 거처했던 방은 왠지 쉬 범접하지 못할 서기가 어려 있고 위엄과 기풍이 가득해 바깥하고는 공기의 질이 다른 것같이 느껴진다.

선비들이 일상에 가까이 두고 썼던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우선 방 귀퉁이엔 대추나무나 참죽나무로 만들었을 사방탁자가 보이고, 윗목에 문갑이 있고 벽에는 방주인의 옷과 도포가 얌전히 걸려 있다. 사방탁자에는 눕혀 켜켜이 쌓은 책들이 보인다. 붓을 꽂아두는 필통(筆筒), 종이를 담아두는 지통(紙筒), 벼루에 물을 따르는 데 사용하는 연적(硯滴), 붓을 걸쳐놓거나 꽂아두는 필가(筆架), 붓 빠는 물을 담아두는 필세(筆洗), 먹을 담아두는 묵호(墨湖) 등도 보인다. 여기에 먹, 벼루, 붓, 종이를 합치니 문방십우(文房十友)이다.

문방(文房)이란 옛날에는 문서를 관장하는 방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말이었지만 나중에는 서화를 관장하는 방이라는 뜻으로 사용했다. 문방사우는 중국 안휘성 선성(宣成) 부근에서 난다는 선지(宣紙), 안휘성 휘주(徽州)에서 난다는 휘묵(徽墨), 절강성 호주(湖州)에서 나는 호필(湖筆), 그리고 광동지방에서 나는 단계벼루가 으뜸이라 한다.

턱수염이 기다랗고 눈매가 휘황한 노인이 홀로 술잔을 들고 앉아 달을 바라보는 조각이 돼있다거나 소장자의 자작시가 새겨져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붓은 배에서 사는 쥐의 수염으로 만든 것(鼠鬚筆)을 최상으로 쳐서 누구나 탐냈다고 하지만 호주(湖州)에서 나는 호필(湖筆)도 양털과 족제비털, 토끼털을 한 가닥 한 가닥 모아 70여 번의 공정을 거쳐 만든다고 하니 그 정성과 깊이가 얼마 정도인지 가늠이 된다.

자신의 부족함을 수양하고 흔들리는 자신을 면벽하며 다스렸던 선비의 방에 필요한 것이 10우뿐이랴. 느릅나무로 만든 서안(書案), 역시 느릅나무로 만든 연상(硯床), 책가도(冊架圖)나 기명도(器皿圖) 한두 점, 승천하는 용이 그려진 문진, 그리고 점잖게 사방탁자를 타고 앉은 백자주병도 운치가 있지 않겠는가? 

그 밖에도 밤에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려면 등잔불도 필요한데 등잔대에 두보나 이백의 시구라도 새겨진 청려장을 닮은 것이라면 좋을 것이다. 더 욕심을 낸다면 동화로와 차를 우리는 무쇠주전자, 빙렬마다에 찻물이 곱게 밴 자기 찻잔 서너 개이다.

빠진 게 하나 있다. 소나무의 기상과 난초의 유연함과 잎과 뿌리에서 나는 맑고 그윽한 향으로 선비의 청빈사상과 닮아 문방오우에 포함했다는 석창포(石菖蒲)가 그것이다. 석창포 화분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 밤새 책을 읽어도 눈이 피로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아침에 석창포 잎 끝에 맺힌 이슬로 눈을 씻으면 눈동자가 커져 눈이 밝아진다 하여 수많은 시인들이 아껴 품었던 식물이다. 거기에 댓잎이 바람에 씻기는 소리가 들리고 달이 뜨는 날에는 창호지를 바른 격자무늬 창문으로 나뭇잎 그림자가 서성인다면 무엇이 부러우랴.

당경(唐庚)의 가장고연명(家藏古硯銘)에 이르기를 벼루에는 이렇게 쓴다고 한다.

"날카롭지 못해서 둔한 것을 몸으로 삼고, 움직이지 못해서 고요함으로 쓰임을 삼는다. 다만 그렇게 함으로써 수명을 영원히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지금과는 도무지 맞지 않는다. 영악한 우리들에게는 느려 보이고 답답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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