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는 324m다. 무게는 1만t에 이른다. 3층까지 모두 1천665개의 계단이 있다. 1만8천38개의 철골과 2천500만 개의 못이 사용됐다. 프랑스 파리 마르스 광장에 도드라지게 우뚝 선 철탑이다. 

1889년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세계박람회 출입 관문용으로 세웠다. 설계자 귀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의 이름을 땄다. 20년만 전시한 뒤 해체할 예정이었으나 라디오 송신탑 기능을 인정받아 존속하게 됐다.

매년 수백만 명이 방문할 정도로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지만 건축 당시부터 에펠탑은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예술의 도시라는 자긍심으로 무장한 파리 시민들의 눈에는 도시 미관을 좀먹는 ‘추악한 철 덩어리’에 다름 아니었다. 무게감 있는 석조 건축물이 주를 이루는 도시에 골조만으로 이뤄진 에펠탑은 ‘불순물’ 그 자체였다. 

특히 예술·문학계 셀럽들의 거부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여자의 일생’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사실주의 작가 기 드 모파상은 거의 매일 점심 식사를 에펠탑 안의 식당에서 해결했단다. 맛집이어서가 아니라 파리 시내에서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유일한 ‘명당’이었기 때문이란다. 에펠탑에 대한 반감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처음에는 비호감이었지만 자주 보게 되면서 점점 호감으로 변하는 현상을 ‘에펠탑 효과’라고 한다. 

폴란드 출신의 미국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자이언스가 제창한 심리학 용어다. 신들의 왕인 ‘제우스’는 올림포스에서 가장 못생긴 ‘헤파이스토스’에게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프로디테’를 아내로 삼게 했다. 흔히 이들의 결합을 ‘미녀와 야수’의 원조라고들 한다. 비록 ‘아프로디테’의 타고난 남성 편력 탓에 결혼 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에펠탑 효과’가 없었다면 절세가인이 추남 중의 추남을 마주보고 사는 게 과연 가능했을까.

용인시민들은 지역의 대표적인 3대 흉물로 경량전철과 미르스타디움, 아르피아 전망대를 꼽는다. 태생단계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는 점에서 닮은 꼴이다. 3대 흉물이 ‘에펠탑’ 자리를 밀어내고 ‘경량전철 효과’, ‘미르스타디움 효과’, ‘아르피아 전망대 효과’라는 신조어를 낳는 날이 과연 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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