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식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연구교수
신진식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연구교수

필자는 그간 대학에서 동양철학 교양 강의를 맡아오면서, 그 철학적 상상력의 기원을 살펴보는 과정으로 동양신화를 먼저 소개해 왔다. 본격적인 신화 강의 전에 학생들에게 늘 던지는 질문이 한 가지 있다. "바다의 신의 이름은?", 아니나 다를까 이에 대한 대답으로 학생들은 당연한 듯 이구동성으로 ‘포세이돈’을 외친다. 물론 그 가운데 눈치를 살피다가 용왕이라고 머뭇머뭇 대답하는 학생들도 더러 있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동양인의 탈을 쓴 서양인이다"라는 말로 그 정체성을 확인시켜 준다. 그런 다음 동양을 대표하는 해신의 이름 하나를 알려준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매우 낯선 동양의 해신인 그의 이름, 아니 그녀의 이름은 바로 마조(마祖)이다. 

모험과 도전의 상징이면서 다소 폭력적인 성격을 지닌, 삼지창을 든 우락부락한 포세이돈과는 달리, 마조는 모든 것을 감싸고 돌보는 온화하고 푸근한 성격을 지닌, 물병을 든 부드러운 여성신이다. 10세기 후반, 중국 푸젠성 메이저우(湄洲)라는 섬에서 한 무녀(巫女)에 지나지 않았던 임묵(林默)이 젊은 나이에 사망한 후에 해안 지방 뱃사람들에게 항해 수호신으로서 신앙의 대상이 되었는데, 그것이 마조 신앙의 유래다. 임묵은 어려서부터 현명해 유교 불교 도교의 온갖 서적을 섭렵했다. 게다가 신통력이 있어 사람들의 병을 낫게 해 주고 항해 중의 난파선을 구해주는 등 여러 가지 기적을 행했다. 

그리하여 결국 마조는 항해자의 수호신이자 재액을 물리치고 복을 가져다 주는 만능신으로 신격화됐다. 이 마조는 상대적으로 좁디좁은 지중해의 신이었던 포세이돈이 그랬던 것처럼, 화교들에 의해 전 세계에 널리 퍼지며 그 보편성을 획득해갔다. 마조 신앙은 항해자의 족적을 따라 중국의 연해 지방과 동남아, 일본뿐만 아니라 미대륙과 유럽 각지로까지 전파됐는데, 천년이 지난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재에 등재될 만큼 여전히 그 명성과 권위를 유지하고 있다. ‘마카오’라는 도시명이 마조를 모신 사묘(祠廟)인 ‘마각(마閣)’이라는 말에서 유래했고, ‘홍콩(香港)’이라는 도시명이 ‘홍향로항(洪香爐港)’, 곧 마조 제사 시에 사용되는 ‘붉은 색의 향을 피우는 향로(洪香爐)’가 있는 ‘항구(港口)’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하니, 해신인 마조의 위상을 짐작할 만하다.

바로 이 마조가 인천 차이나타운의 의선당이라는 곳에도 모셔져 있다. 의선당은 배신선당(拜神善堂)이라고 하여, 신에게 제사 지내는 사당과 선당이 결합된 톡특한 형태의 사원이다. 인천 개항 후, 인천에 거주하는 화교들이 늘어남에 따라 화교들의 정신적 단합과 교화를 위한 시설이 필요해졌고, 이에 황합경 스님이 1893년 지었다고 전해진다. 처음에는 사당 한 채와 부속채 한 채로 세워졌으나 지금은 많이 개축됐다. 한때는 한국의 인천과 서울지역에 거주하는 화교들의 비밀결사인 재가리(在家裡)의 본부이기도 했다. 이곳 의선당에 모셔진 오삼태야, 사해용왕, 관음보살, 관공, 마조 등 다섯 신위의 토상(土像)들은 청나라 말기 중국 종교미술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현재는 인천 차이나타운의 대표적인 중국식 종교 건축물 중 하나이다.

오늘날 마조의 탄신일인 3월 23일이면, 마치 이슬람교도들이 성지 메카를 순례하듯 중국 내지 사람들은 물론, 타이완,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지의 화교들은 마조의 출생지인 메이저우섬의 마조묘를 찾아가 참배하는 일이 많다. 물론 이때 탄신일을 전후로 국가의 지원을 받는 대규모 종교문화 행사가 열린다. 우리가 비록 중국을 직접 방문해 행사에 참여하긴 어렵더라도 의선당은 한 번쯤 방문해 낯선 해신을 영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그간 화교에 대해 지나치게 배타적이었던 탓이었을까? 우리는 생각보다 중국문화에 대해 무지하다. 이번에 그 이해의 폭을 넓혀 볼 기회를 마련해 보자. 중국 현대사회의 기반인 전통적인 사회 질서 및 기층문화와 해양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조 신앙에 대한 이해가 필요불가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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