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의 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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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의 애무
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객원논설위원
  • 기호일보
  • 승인 2020.09.02
  •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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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부드럽고 평온하다. 온몸을 감싸 안으며 다가올 때는 그저 멈추는 수밖에 없다. 애인도 이런 애인이 없다. 그 어떤 손길도 이처럼 푸근할 수가 없다. 살아생전에 이러한 애무를 받아본 적이 없다. 안개는 운수 좋은 날 갑자기 다가와 영혼까지 어루만지며 한순간 인간을 뇌쇄시킨다. 내 어릴 적 시골 앞산 개골에 피어오르던 모습은 조선 영조 임금 때 겸재의 수묵 산수화 속 비안개처럼 뇌리에 박혀 있다. 반백 년 전쯤, 그리 넉넉지는 못했으나 순수 속에 휩싸였던 정경은 한지에 퍼지는 담채의 먹빛 여백같이 선연하다. 여닫이 문살 밖으로 펼쳐지던 오묘한 연출은 엄친의 후광처럼 잊고 지내온 옛 추억을 되살린다. 산안개는 곧 치유다. 신유(神癒)의 은사(恩賜)처럼 아픈 상처를 말끔히 낫게도 한다. 얼기설기 민둥했던 앞산은 어느새 하얗게 치유되면서 정수리를 빠끔히 뽑아 올리곤 했다.

한편, 강물 위에 서리는 안개는 아기를 품에 껴안은 모성처럼 온화하다. 자모의 무한한 내리사랑은 갖은 굴욕적 비행도 녹여 품는다. 강안개는 곧 용서다. 세상에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잘못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어느 누구라도 이런 안개를 만나는 순간, 그것이 비록 잠시잠깐이더라도 복된 안도감에 잠기기 십상이다. 이처럼 안개는 인간사 오욕칠정을 살부드럽게 조율하는 신의 손길 같은 것이다. 1964년 발표된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은 안개가 없었으면 한 시대를 풍미한 대표작으로 살아남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영화나 드라마로 각색된 작품을 문청시절에 다시 보면서 남은 여운이란 게 거의 안개로만 가득 차 있다. 여기서 안개는 개인의 꿈과 낭만이 용인되지 않는 사회조직 속에 깔리는 허무로 상징된다. 당시 소외당한 일상인의 고독을 돋보이게 하는 그리메였다.

이제 나의 졸작 연시조 ‘안개의 역설’ 중 셋째 수를 본다. "차라리 안 뵈는 게 그렇게 편할 수야/ 캄캄한 어둠에서 밤눈 절로 뜨이듯이/ 누명 써 밟힌 언동들이 맘껏 부활, 부활커니." 오래전 출장 중 영동고속도로 상에서 마주친 안개 속 느낌이었다. 자옥한 안개는 역설적으로 희망과 부활을 나타낸다. 우리 일상에서 금기시했던 말과 행동이 긍정적으로 살아날 수 있다. 안개의 환상 속에서 느끼는 미적 감각, 즉 환상미의 추구는 현실에서의 불편·불만사항을 순화해준다. 카타르시스를 통해 유토피아적 낙원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조선 초기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스쳐간다. 곧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자는 뜻이 들어있는 작품들이다.

요즈음에는 안개다운 안개를 보기가 쉽지 않다. 비슷하게 보이는 것으로는 연무, 이내, 미세먼지 따위가 있다. 미세먼지는 일기예보를 보고 마스크를 챙겨 써야 할 만큼 우리들 가까이 있다. 낭만적인 안개와 사뭇 다르다. 연무나 미세먼지 곁에서는 빛깔 고운 화해의 시를 읊을 수 없다. 중국대륙은 물론 우리나라의 올여름 한철은 온통 물난리로 야단이 났다. 더구나 연초부터 발생된 코로나19 사태는 우리의 생활양상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이를 총괄하는 질병본부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대면사회 오프라인 생활에서 비대면사회 온라인 생활로 전환되는 과도기적 상황은 국민 누구나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친지간 경조사 참여마저 조심스러워진 가운데,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한 정부의 강한 검진조치에 불협화음도 없지 않다. 이런 때일수록 정부당국은 인권침해 소지가 없도록 더 세심하게 대상 국민을 배려해야 한다. 난국일수록 선정의 빛이 난다. 이상한 것은 작금 주변인들이 둘로 갈라져 있다는 느낌이다. 이른바 전시(戰時)도 아닌데 왜 이리 됐는지 안타깝다. 국민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다양성을 존중하되 이를 통합해 국론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긴요하다. 국회·법원·정부 등 삼권분립 기관별로 부여된 역할과 책임이 두루 무겁다. 흐릿하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이내’는 허황하다. 매연덩어리 안개인 ‘연무’나 불청객 ‘미세먼지’도 마뜩잖다. 화합과 희망을 향해 융합하는 ‘안개’, 실로 안개다운 안개가 그립다. 그의 애무를 시조로 청한다.

- 안개 다시 필 때 -

산안개 강안개야 

 여태 어딜 갔다는가

 
 바이러스 혼절시켜
 속속들이 살라먹고
 
 환상껏 
 피어날 세상 
 새벽 타고 데려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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