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생각이 안 났다. 67 빼기 9가 암산으로 계산이 안됐다. 평소에 두세 자리 정도의  더하기 빼기는 암산으로 척척 계산이 됐는데 갑자기 막혀버린 것이다. 자려고 누웠는데 공포가 밀려왔다. 평소에는 무리 없이 했던 일들이 갑자기 꽉 막혀버리는 경험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의도했던 말이 아닌 다른 말을 할 때도 많이 있고, 뭘 하려고 했는지 갑자기 버퍼링에 걸려 한참 멍하게 있을 때도 종종 있다.

어제 했던 일도 생각이 안 나고, 바로바로 메모를 하지 않으면 스케줄을 놓칠 때도 많다. 예전에 원로배우가 산 이름 100개를 매일매일 반복해서 외우는 장면이 생각난다. 이제는 내가 그런 훈련을 해야 하는 때가 됐나 보다. 단순히 숫자 계산이 안 됐을 뿐인데 웬 호들갑이냐고 하겠지만, 나이가 육십에 가까워지면서 인생관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집착을 버리라고들 말한다. 

100세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반환점에서 조금 더 지났을 뿐이고 앞으로 일도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기 존재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타협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이제는 남에게 승인을 받는 것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결정적인 실수를 해서 일이 잘 안 풀릴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애초에 그 실수의 원인을 없었던 일로 덮어 버릴 수는 없으니 실수를 반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수를 만회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냥 자연재해로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이만큼 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몸이든 마음이든 비우는 일이다. 이제까지 누리고 살던 것을 줄이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다. 잘 나갔던 내가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이 얼마나 큰 상실감을 주는지도 잘 알고 있다. 이렇게 변화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잘 생각해 보고 현실에 내 자신을 맞춰 나갈 수 있는 적응력을 키우고, 변화하는 현실 상황에 무력감에 빠지지 않도록 마음을 바꿀 수 있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변화하는 상황을 받아들이자는 예로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요즘 틀면 나오는 것이 우리 부모님이 들으시던 트로트다. 어린 시절에는 팝송을 너무 좋아해서 팝송만 노래라고 여겼다. 트로트는 가사 내용들이 슬픈 사랑이나 이별 그리고 후회와 애환이 담긴 가사이기도 했고, 트로트는 구시대적이고 촌스러워 나이든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해서 터부시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 노래들을 지금은 즐겨 듣고 있다. 이런 것들이 나이가 주는 현실 상황이고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다 포기해 버리고 자존심도 내려놓는 것이라고 착각할 수 있지만 내려놓는 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말도 된다. 사사로운 자존심이 내 안에 있는 비겁한 자존심을 먹여 살찌운 결과로 자신의 보잘 것 없는 자존심에 잡아먹히고 만다는 말이 크게 와 닿는다. 오늘부터 사사로운 자존심을 내려 놓고 하루에 고유명사 100개를 외우는 뇌 훈련을 시작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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