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장애인이나 치매노인과 같이 아픔이 있는 사람들은 많이 알지만, 그 사람들을 둘러싼 가족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못합니다. 사회복지 영역이 넓어짐과 동시에 이제는 장애인의 가족까지도 돌보는 사회복지적 접근이 있어야 합니다."

올 9월 7일은 ‘제21회 사회복지의 날’이다. 21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사회복지 종사자들이 곳곳에서 땀을 흘렸고 그만큼 한국 복지는 성장했다. 이제 어디로 향해야 할까. 이 물음에 인천지역 장애인 복지 증진에 힘을 쏟고 있는 사회복지법인 ‘미선’의 박선원(58)이사장은 "장애인 당사자뿐 아니라 그 가족의 어려움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박 이사장은 장애인시설을 운영하면서 장애와 장애인 가족에 대해 연구해 오고 있다. 발달장애 아동 어머니의 양육 부담이 부부 갈등에 미치는 영향이나 발달장애 가정 내 비장애 청소년에 대해서도 연구 결과를 냈다. 그가 장애인 복지에 이토록 섬세하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가 장애인의 가족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박 이사장이 복지사업에 뛰어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들이었다. 올해 28세인 둘째 아들은 ‘자폐성 발달장애인’이다. 아들이 자랄 때만 해도 자비로 특수교육을 시켜야 했고, 제대로 된 시설도 없는 등 사회적 장치가 열악했다. 가족의 힘만으로 본인만의 세상에 있는 아들을 키워 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박 이사장은 아들을 키우는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다른 부모들은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2008년 사회복지법인 ‘미선’을 설립했다.

박 이사장은 "우리 아이를 키울 때는 엄청나게 힘든 시절이었다"며 "돈도 없었고, 형편이 좀 나아지니 우리 같은 젊은 부모들이 얼마나 힘들고 아프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법인을 세우고 중증장애인 시설을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며 법인 설립 당시를 떠올렸다.

사회복지법인 ‘미선’은 장애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삶의 주인이 돼 행복하게 생활하고, 이를 통해 진정한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영흥도에서 2009년부터 운영 중인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해피타운’이 대표 시설이다. 해피타운에는 20대 후반부터 60대 초반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37명이 생활하며 교육도 받고 직업재활도 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법인에서 인천중구장애인복지관과 인천장애인주간보호센터, 인천중구장애인보호작업장, 구립태양어린이집 등 중구의 사회복지시설도 위탁해 함께 운영한다. 시설을 위탁한 이유는 장애인 거주시설과 복지관이 유기적으로 연계돼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박 이사장은 "거주시설에서의 생활과 복지관의 ‘데이프로그램’을 복합적으로 연계한 서비스 제공을 위해 장애인복지관을 위탁받았다"며 "그래야 커뮤니티에서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흡수하고, 또 집에서 케어가 힘든 아이들은 거주시설에서 흡수할 수 있다. 아이들의 생활 스펙트럼이나 포용력도 넓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이사장의 이 같은 생각들은 시설을 법인으로 세우고, 복지 분야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며 정립된 것이다. 사회복지법인에 이어 같은 해 재단법인 ‘미선장학회’까지 세운 그는 열정만으로 복지사업을 하기엔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2009년 대학원에 입학했다. 

공부를 시작하고 관심을 쏟은 분야는 ‘장애와 장애인 가족’이었다. 석사 논문으로 발달장애 가정 내 부부 갈등에 대해 연구했고, 박사 논문은 발달장애인 가정 내 비장애 청소년을 연구했다. 장애인인 둘째 아들도 힘들었지만, 그와 같이 자라는 첫째 아들과 부모인 박 이사장 부부도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이다. 모든 연구는 박 이사장이 생활했던 상황을 되짚어 보는 과정이었다.

공부를 위해 떠난 미국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 박 이사장은 2011년 당시 인천연일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둘째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때까지 말을 잘 못할 정도로 중증이었던 아들은 미국에서 생활하며 오히려 한국어로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졌다. 박 이사장은 미국의 에이전시·학교·작업장·정신병원 등 다양한 사회복지 관련 유관시설을 다니며 장애인특수학교를 설립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 

그는 "미국에서 장애인시설과 자폐전문학교를 다니며 경험하고 배웠던 것을 우리나라에 접목해 자폐장애인도 교육을 잘 받으면 훌륭한 사회인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며 "거주시설과 데이프로그램, 평생교육 등을 거쳐 최종적으로 자폐전문학교를 세우는 것이 목표"라고 다짐했다.

언젠가 박 이사장이 세울 자폐전문학교에서는 교육을 받는 아이에게 온 초점이 맞춰지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다. 한국의 특수교육은 당사자인 장애인보다는 공급자 위주로 이뤄지는 한계를 느꼈다. 개별교육 계획을 수립하지만 진단과 평가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반면 미국에서는 아이들이 교육단계를 올라갈수록 평가가 정확히 이뤄진다. 담임교사와 부모, 학생, 간호사, 정신과의사, 교육 관계 직원 등 7~8명이 위원회를 구성해 아이에 대해 평가한다. 

박 이사장은 "아이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계획 수립부터 중요한데, 담임교사 혼자 계획을 세우면 의학적인 부분이나 다른 면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아이는 하나지만 그 아이의 전체적인 일생을 놓고 봤을 때는 전문가그룹의 도움을 받아 최대한의 서포터를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렇듯 장애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직접서비스 제공을 크게 늘려야만 한다. 박 이사장은 지금까지 사회복지 예산이 크게 늘어왔음에도 직접서비스 부분은 부족하다고 봤다. 건물을 세우고, 기자재를 가져다 놓고, 사람을 대거 고용하는 등 하드웨어적인 부분에 예산이 치중돼서다. 또 직접서비스 확대를 위해서도 우리나라 복지제도를 전환해야 할 필요성도 주문했다.

박 이사장은 "직접서비스 제공을 대폭 늘리기 위한 전달체계의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체계 보완이 없으면 복지예산이 아무리 올라가도 소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한 사람을 놓고 지원하는데 교육부·고용노동부·보건복지부 등 여러 부서가 다 연결돼 있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모든 복지에 대한 모든 분야를 총괄하는 곳이 있어야 서비스도 일관성 있고 체계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앞으로 해 나가야 할 일들을 거침없이 그리는 그만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사회복지 사업을 하며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을 묻자 박 이사장은 장애인 거주시설 ‘해피타운’의 거주인들을 떠올렸다. 처음 시설에 왔을 때는 스스로 활동할 수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생활하는 과정에서 좋아지고 밝아지는 모습에 힘을 얻는다.

37명의 거주인 모두가 자식 같고 가족 같다는 박 이사장은 "한국에는 중증장애인 시설이 800여 개가 있는데, 우리 아이들 얼굴이 가장 밝을 것"이라며 "사회복지를 하는 분이 방문할 때면 아이들에게 감명을 받고 큰 힘을 얻고 간다고들 한다. 비결이라면 항상 진심을 다해 가슴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자신했다.

진심의 힘을 믿는 그는 우리 사회가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보다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장애를 가졌다고 약자라고 배척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배려해 주는 사회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 이사장은 "나는 언제든 장애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장애인과 그 가족을 이해하는 것은 곧 우리 가족의 아픔을 이해하는 것"이라며 "예전에 나 역시 ‘나와 장애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자식이 장애를 갖고 있다 보니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기보다는 공동체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했으면 좋겠다"며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진 생각보다는 남이 가진 생각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지 않을까요"라며 웃어 보였다.  

홍봄 기자 spring@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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