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것이 ‘말’일 것이다.

불교에서는 몸으로 짓는 신업(身業)과 말로 짓는 구업(口業), 그리고 생각으로 짓는 의업(意業) 등 세 가지 업을 짓지 말라고 가르친다. 

세부적으로 우선 신업(身業)은 살생(殺生)과 도둑질(투도-偸盜), 삿된 음욕(사음-邪淫) 등으로 나뉜다. 

두 번째 구업(口業)으로는 거짓말(망어-妄語)과 이간질(양설-兩舌), 욕설과 험담(악구-惡口), 이치에 어긋나는 괴변(기어-綺語)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의업(意業)은 탐욕(탐-貪)과 분노(진-瞋)와 어리석은 마음(치-癡)으로 죄를 짓는다는 것이다 

세상이 어지럽다 보니 요즘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한 번 내뱉은 말은 결코 주워 담을 수 없다. 말은 늘 조심해서 해야 하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띄어 눈살이 찌푸려진다.

사람마다 사물에 대한 관점과 가치관이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면서 위에서 이야기한 세 가지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들의 언행에 쉽사리 동조하기 어렵다.

보통 사람들이 수긍하기 어려운 내용이라면 입 밖으로 표현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된다. 

자신만의 고집과 자존심이라는 갑옷을 입고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기 어렵고 그 어디를 가더라도 부딪치지 않고 살 수 없을 것이다. 

불평을 말하기 전에 먼저 그 상황의 원인을 잘 파악해 보라는 충고를 하고 싶다. 불만의 원인은 자신에게 있을 수 있다.

당장 불편하고 마음에 안 든다고 말을 쏟아내 버린다면 나중에 사과할 일만 늘어가고 자신의 입지만 줄어들 것이다.

누구나 공감하는 좋은 것에 대해서는 쉽게 말하는 것은 괜찮겠지만 그 반대라면 말을 아끼는 것이 좋다. 그래야 불평불만이나 다툼이 생기지 않고 두루 편안하다. 

그 누군가를 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가 덜 불편해지고 살기 편안한 곳을 만들기 위해 말을 하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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