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한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8개월이 넘었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서늘해지고 가끔 푸른 가을 하늘이 열리는데도 마음은 무겁고 한숨소리만 도처에서 들린다. 방역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비롯해 감염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많은 걸 희생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런데 갈수록 볼썽사나운 전광훈 목사와 그 추종자들의 행태에 대해 정부 차원의 대응은 일반 시민의 기대와 한참 멀다.
보도를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그 일당의 법률 위반과 엉뚱한 짓거리가 알려지는데 공권력은 마치 숲속의 잠자는 공주를 연상시킨다. 공직기강이 해이해진 탓일까. 검찰과 경찰은 너무 굼뜨고 법원은 아예 고약하다고 할 정도다. 법원행정처장이라는 사람은 광화문 집회를 허용한 것이 심사숙고한 결과라고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시민이 몇이나 되는지. 그저 일반적인 원칙에만 기대 이 비상 상황에 무책임하게 대응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국가 방역을 단박에 망가뜨려놓고 반성은커녕 되레 허튼 소리만 크게 내지른다. 신천지 이만희 씨는 고개라도 숙였으나 전광훈 씨는 전혀 달랐다. 육아·교육·휴가·결혼·장례 등등 일상이 꼬이고 사실상 실업자가 된 수많은 이들이 안절부절 못하고 있으며 자영업자들은 이대로 주저앉을지 모른다는 근심으로 하루하루를 지옥처럼 견뎌내고 있는 판국 아닌가.
이러다가 어려울 때 위안을 주는 종교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공공의 적’이 되는 교회가 되는 게 아니냐는 염려도 터져 나온다. 전후좌우, 사방팔방이 암담하고 우울한 시민들로 넘쳐나는데 도저히 수긍이 안 된다. 태극기와 성조기, 심지어 이스라엘 국기와 일장기까지 흔들면서 해괴한 소리를 하는 까닭이야 분명하다. 정치적 힘을 가져보거나 그게 아니면 당장의 돈벌이에 유용해서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누구의 사주를 받지 않았을까 하는 궁색한 상상까지도.
이런 와중에 인권에 대한 주장도 나온다. 누구나 종교의 자유,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헌법적 권리다. 물론 인권은 전광훈 씨에게도 보장돼야 한다. 인권의 보편성이야말로 우리가 부여잡고 가야 할 소중한 기본이다. 진영이 달라도, 이념이 달라도, 지금 공동체를 위협하는 저들처럼 해괴한 행위를 해도 인권은 존중돼야 한다. 백번 찬성이다. 허나 돈벌이를 위해 자기 세력 확대를 위해 공동체 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범죄를 저지른 경우 처벌이란 대응은 마땅히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저들이 나와 우리 가족, 우리 이웃에게 중대한 위해를 가하고 있음에도 지금처럼 공권력이 느리게 대응하고 법원처럼 면죄부나 주려는 모습은 실로 심각하다. 법률을 어겨도 상관없다는 배짱이 통하는 사회는 무법천지나 다름없다. 권력이든 돈벌이든 선교든 ‘내 이속’만 차릴 수 있다면 어떻게 하든 아무 상관없다는 그 몰염치를….
코로나19의 엄중한 사태는 과거 위기와 전혀 다르다. 미래가 안 보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가 피 말리는 심정으로 일상을 견디는 건 상상 이상으로 심각하다. 국가트라우마센터에 따르면 확진자 수효가 급속히 일어나자 심리상담 건수가 3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상담을 해야 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포기하는 수효까지 합친다면 몇 곱절 많아질 것이다. 코로나19 위기를 통해 학자들이 제시하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공동체를 앞세우는 공화주의적 가치에 다시 주목하자’는 건 지극 당연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과연 그런 변화를 수용할 수 있을까?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문제 삼는 의사들의 파업을 보면서 낙담하는 이들이 한둘인가? 누구를 탓하려는 게 아니다. 재난은 한 사회의 그늘진 곳이 어디인지 어떤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준다.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더 고통을 주려는 이들이 활보하는 것이라면 그 사회는 희망이 없다. 오직 절망이 휩쓸 뿐이다. 지금 분노의 시선이 쏠리는 방향은 그들 범죄자뿐만 아니라 공권력에 대해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나마 이 재난을 극복하기 위한 힘을 모아주려고 정부를 지지하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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