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섭 전 산업연구원 부원장
심영섭 전 산업연구원 부원장

코로나19 난국에 두 번째 학기를 맞이한 대학가는 ‘싸강(원격수업)’ 논의가 분분하다. 오프라인 강의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온라인 강의는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비대면 원격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대학생이 됐는데도 대학 분위기를 만끽할 수 없고, 파워포인트에 주로 의존하는 사이버 강의에 대한 불만도 섞여있는 듯하다. 비단 원격수업이 아니라도 대학가에서는 파워포인트를 활용한 강의가 보편화돼 있다. 심지어 파워포인트 자료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실력이 없거나 게으른 교수로 치부되기 일쑤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강의 방식에 대해 대체로 회의적이다. 파워포인트를 위주로 하는 강의는 학생들로 하여금 따라가도록 할 뿐, 좀처럼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반 세미나나 콘퍼런스에서 연구 결과를 집약해 발표할 때 유용한 도구로 활용되는 파워포인트와 대학교 교육 현장에서의 파워포인트는 그 효과 면에서 동일시하기 어렵다. 전자는 이미 어떤 내용을 전달해도 충분히 비판할 능력이 있는 전문가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고, 후자는 이제 그러한 능력을 길러야 하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파워포인트를 통한 일방적인 전달 체계는 학생들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파워포인트는 자칫 진도 위주의 주입식 교육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파워포인트를 활용할 경우 강의 진행이 빨라 학생들로 하여금 생각할 틈을 주지 않거나, 심지어 생각하는 능력을 감퇴시킬 우려도 있다. 

이러한 폐해를 감지한 파워포인트 회의론자들은 학교 밖 사회에서도 일찍부터 이를 경계해 왔다. 2009~2010년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대규모 리콜사태를 겪은 이후 토요타자동차는 내부적으로 파워포인트를 활용한 보고를 자제시키고 있다고 한다. 행간(行間)을 파악하지 못하고, 사이사이의 것들을 보지 못한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파워포인트에 익숙해진 기업 구성원들이 받아들이기만 할 뿐, 도대체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국방장관을 역임한 제임스 메티스 전 미국 중부사령관은 "파워포인트가 우리를 어리석게 만든다(PowerPoint makes us stupid)"라고까지 지적했다고 한다. 그와 함께 이라크 전장을 누빈 맥마스터 전 미국 국가안전보좌관은 파워포인트 사용을 아예 금지시킨 일도 있다. 파워포인트는 변화무쌍한 전장에서 상황을 확실히 이해하고 장악하고 있다는 환상을 주기 십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파워포인트를 경계한 사례는 이뿐 아니다. 국내 한 대기업에서는 파워포인트가 업무 효율을 해치는 공공의 적으로 규정해 금지한 일도 있었다. 파워포인트는 슬라이드 서로 간의 논리적 연결이나 정합성을 그리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한다. 

즉, 1번 슬라이드에서 한 얘기 때문에 2번 슬라이드 메시지나 구성, 표현이 큰 제약을 받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파워포인트를 선호하면 문장 만들기에 익숙치 않게 되고 논리적 사고를 방해하며 결국 비즈니스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조치였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가 파워포인트 유용성을 전면으로 부정하려는 건 아니다. 파워포인트를 활용한다 해도 교육 현장에서는 그 부작용을 보완할 방도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고 싶은 것이다. 예를 들면, 학생들에게 이 강의의 주제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문제 의식을 수시로 고취시키고, 질문과 토론식 강의를 활성화해 나간다면 좋은 보완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학생들이 강의 내용을 얼마나 이해했는가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은 강의 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배우는 교육이 아니라 탐구하는 학습이 더 중요하다고들 말한다. 그렇다면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학생보다 생각하는 학생의 양성에 중점을 둬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쉽고 빠르게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럼에도 파워포인트가 갖는 지식 전달의 효율성에만 매몰되지는 않았는지 대학인 모두가 성찰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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