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표현에서 사회통념과 남편의 의사에 무조건 따르는 순종적인 아내를 스텝포드 와이프(Stepford Wife)라 부른다. 이는 현모양처와는 뉘앙스가 다르다. 왜냐하면 스텝포드 와이프는 남편에게 완전히 제압된, 남편의 요구사항에 따라 구성된 일종의 맞춤형 아내이기 때문이다. 이 용어는 1972년 아이라 레빈의 스릴러 소설 「스텝포드 부인들」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다. 이후 1975년 동명 영화가 개봉했고, 2004년에는 리메이크됐다. 오늘 소개하는 2004년 영화는 원작에서 느껴지는 공포 정서보다는 풍자적 성향이 강한 블랙코미디 작품이다.

유명 TV 프로듀서 ‘조안나’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커리어우먼이었다. 쭉 뻗은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녀는 자극적인 프로그램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하루아침에 해고당한다. 상실감에 빠진 조안나를 돕기 위해 남편 월터는 살기 좋은 마을이라 소문난 스텝포드로 이사 갈 것을 제안한다. 

소문대로 스텝포드는 굉장한 곳이었다. 목가적인 환경 속에 화려한 최첨단 주택단지까지 무엇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다. 게다가 이웃들도 하나 같이 여유롭고 친절했다. 조안나는 도시생활과는 다른 분위기에 적응하려 노력하지만 이내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다. 스텝포드 주부들은 지나치게 개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살아있는 바비인형처럼 환한 미소와 완벽한 체형의 아내들은 오직 집안일과 내조만이 삶의 전부이자 즐거움이었다. 

조안나는 평온함 속에 감춰진 마을의 비밀을 파헤치다 의아한 사실을 알게 된다. 인형처럼 예쁘고 순종적인 여성들은 전직 CEO, 판사, 과학자 등 성공적인 커리어가 있었다는 점이다. 180도 달라진 여성들의 모습에서 수상함을 포착한 그녀는 남성들의 아지트인 남성회관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바비인형을 닮은 자신의 초상화도 보게 된다. 사실 스텝포드는 남성의 기를 죽이는 성공한 아내보다 가정적이고 순종적이며 동시에 인형처럼 완벽한 몸매를 갖춘 맞춤형 로봇 아내를 제공하는 곳이었다. 이제 남은 일은 남편 월터가 희망하는 완벽한 아내의 모습으로 조안나가 변할 차례다.

‘스텝포드 와이프’는 가부장사회가 지향하는 모습으로 여성을 바꾸려는 고정관념을 비웃는 작품이자 성 역할을 강요하는 집단의 광기를 섬뜩하게 포착한 영화다. 주로 여성을 가둔 편견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남녀를 이분법으로 나눠 한쪽만을 두둔하는 작품은 아니다. 아내에게 여성적임을 강요하는 프레임은 역으로 보자면 남편에게도 남성다움을 강요한다는 뜻이다. 어떤 틀, 기준을 정해 두고 그곳에 상대를 맞추는 과정에서 폭력과 비극이 발생한다. 

영화는 아내들을 꼭두각시로 만들어 억지로 대접받으며 살아가는 비현실적인 사회를 비추며 과연 그런 삶이 행복인지 되묻고 있다. 완전무결한 존재는 허상일 뿐이다. 특정 성 역할에 얽매이지 않고 맡은 삶에 책임을 다할 때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은 오래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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