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예찬(禮讚)
상태바
우리 술 예찬(禮讚)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전 인천 남부교육청 교육장
  • 기호일보
  • 승인 2020.09.17
  • 11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알코올 함량 1도 이상의 음료." ‘술’을 정의한 말이다. 과실이나 곡물을 이용해 제조된 것은 물론이고 증류주에 이르기까지 알코올 성분이 1도라도 들어있는 음료는 모두 술이다. 기원전 4500년께 이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라고 하는 티그리스강 유역 고대 수메르인들이 포도주를 만들어 먹었다고 하니, 술은 거의 인류와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술만큼 인류 역사에 영향을 미친 음식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술에 대한 견해와 호불호(好不好)가 여전히 극과 극을 달리고 있긴 하지만, 수천 년간이나 사라지지 않고 인류와 함께해 온 것을 보면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이다. ‘한서(漢書) 식화지(食貨志)’ 하편에는 술을 일컬어 ‘온갖 뛰어난 약 중 가장 으뜸’이라 하여 ‘백약지장(百藥之長)’이라 했고, 술을 마시니 근력이 생기고 묵은 병도 낫는다고 해 음주를 권장하는 옛 기록도 많다. 어른을 봉양하고, 예(禮)를 행하는 데에 술 이상 좋은 것이 없다고 하는 기록 역시 술을 인간 생활에 필요한 것으로 보는 긍정적인 견해이다. 

반면에 술을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아주 강하다. 혹자는 술이 사람을 취하게 하여 정신을 흐리게 하는 ‘광약(狂藥)’이라고도 했다. 사람에 따라서는 주정이 심해 몸을 해치고 재산을 탕진하기도 하고, 어떤 임금은 주색(酒色에 빠져 나라를 망치는 일도 있었기 때문에 ‘망신주(亡身酒)’ 또는 ‘망국주(亡國酒)’라는 말도 생겨났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도 "잘 먹으면 약주(藥酒), 못 먹으면 망주(亡酒)", "술에는 장사(壯士)없다"라고 했으며, 명심보감에도 "술이 백약의 으뜸이라고 하나, 만병 또한 술로부터 일어난다"라고 했다. 애주가로 잘 알려진 청록파 시인 조지훈도 "술을 많이 마시기보다는 잘 마시는 것"이 중요하다 했다. 그는 수필 ‘주도유단(酒道有段)’에서 바둑처럼 술 마시는 사람에게도 엄연히 수준이 있다며 나름 등급을 매겨 놓기도 했다.

서양, 특히 유럽 쪽의 목축 문화는 포도주와 맥주, 그리고 위스키나 브랜디처럼 누룩을 사용하지 않은 술을 만들어 냈고, 계절풍의 영향을 받는 몬순(monsoon)기후 지역인 동남아시아에서는 곰팡이를 이용해 술을 빚어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우리 술 역시 곰팡이가 자연 번식한 누룩을 사용한다. 녹말을 포도당으로 변화시키는 구실을 하는 누룩곰팡이, 신선한 바람과 깨끗한 물, 햇빛, 그리고 사람의 지혜와 노력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우리 술은, 제조 과정만 보더라도 지극히 과학적이라서 음식 중의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와인처럼 섬세하거나, 브랜디와 같이 화려하지는 않으나, 잘 익은 우리 술은 달곰하면서도 새콤한 맛, 그리고 쌉싸름한 맛과 함께 구수한 맛이 어우러져 있어 서양 술과는 전혀 다른 색다른 향과 맛을 느끼게 한다. 삼한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우리 술 문화는 조선시대에 오면 관혼상제(冠婚喪祭)를 중시하는 유교의 영향으로 널리 일반화된다. 막걸리나 동동주와 같은 가양주(家釀酒)가 널리 빚어졌고, 특히 명문가나 종가(宗家)에는 좋은 술이 대물림돼 ‘명가명주(名家銘酒)’라는 말까지 생겼다. 

가양주는 보통 세시주(歲時酒)와 절기주(節氣酒)가 특징인데, 세시주는 말 그대로 명절이나 세시 풍속에 맞춰 빚는 술이다. 이를테면 설날 차례상에 올리는 도소주(屠蘇酒), 음력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 마시는 귀밝이술, 추석을 앞두고 햅쌀로 빚은 신도주(新稻酒) 같은 술이 세시주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절기주는 계절 따라 피는 꽃이나 과일, 곡식으로 담는 술을 말한다. 과일이나 곡식을 이용해 술을 빚는 민족은 많겠지만, 산천의 꽃을 따서 색색의 술을 빚어내는 민족은 우리 말고 또 어디에 있을까?

진달래 연분홍 꽃잎으로 담는 두견두(杜鵑酒), 복숭아 꽃을 넣어 빚어내는 도화주(桃花酒), 소나무 꽃가루 향이 좋은 송화주(松花酒), 그리고 늦가을 국화를 재료로 하여 빚어내는 국화주(菊花酒), 게다가 온갖 꽃잎을 따다 섞어 빚어낸다는 백화주(百花酒)까지 우리 술의 멋과 맛은 끝이 없다.

"자네 집에 술 익거든 부디 날 부르소. 내 집에 꽃 피거든 나도 자네 청해 옴세. 백 년 시름 잊을 일을 의논하려 하노라." 대동법을 주창했던 조선 중기 명재상이자 청빈 선비 김육(金堉)이 지은 정이 넘치는 시조다. 예나 지금이나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은 물론이고, 나처럼 주량이 적은 사람일지라도 술 향기와 분위기에 취하고, 맛과 멋으로도 즐길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술의 진한 매력이 아닐까? 

기호일보, KIHOILBO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