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옥엽 인천여성사연구소 대표
강옥엽 인천여성사연구소 대표

지금까지와는 다른 입장에서 역사를 이해하려는 다양한 시도 중의 하나가 여성사다. 여성사가 대두한 것은 여성운동 전개 과정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서양의 경우 여성사가 처음 시작된 것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이다. 이 무렵 각국에서는 여성 참정권운동이 일어나 교육·직업·정치와 같은 기본적인 시민권 불평등을 시정하려 했다. 이러한 여성운동은 여성불평등의 원인을 찾아 과거로 눈을 돌리게 했고 이것이 여성사가 등장하게 된 원인이 됐다. 

우리의 경우도 1898년 ‘여권통문’이 제시되고 1970년대에 대학에 여성학이 도입된 이후, 80년대 여성운동과 함께 발전을 이뤄왔다. 여성사 자료는 특성상 독립된 단독 사료가 드문 형편으로 대부분 다른 사료 속에 섞여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처음에는 사료를 발굴해 나열하는 것이 중심이 되고 여기에 두드러진 몇몇 인물을 중심에 놓고 서술하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다. 단편적인 자료라 하더라도 축적되면 다양한 연구 소재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 역사 전반에 걸쳐 여성은 주로 가족관계 속에서만 파악됐고 한 인간으로서 독자적인 사회활동에 대해서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언급되지 못했다. 

지금까지 각 시대에 걸쳐 여성의 사회·경제·정치적 지위, 가족제도 변화, 여성의 재산 상속권에 관한 연구와 특수직 여성으로 분류되는 기녀·의녀·궁녀·무녀 등 생활상 연구에서 일정한 성과가 있었으나 사료의 한계로 여성들의 역사를 재구성하기에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이렇게 된 원인에는 조선왕조의 정치 이데올로기였던 성리학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성리학적 명분론에 젖어 있던 유학자들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행동 반경을 가정 내로 제한하려 했고, 역사 자체를 철저하게 가부장제도 확립에 활용했다. 따라서 고대사회 여성의 정치적 위치나 활동 등에 있어서까지 실제적 역사 사실조차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역사 사실을 고의적으로 은폐 삭제하려 했고 때로는 유교적 예와 명분에 어긋나는 사실에 대해서는 비인륜적이라 신랄하게 비판·매도했다. 

더구나 전근대 시기 여성교육은 제도권 내에서 정규적 과정이 아니라 비형식적으로 전개돼 오로지 현모양처형 인간상을 표본으로 유교 정신에 입각한 도덕 규범을 습득시키는데 그쳤다. 결국 전통적 유교사회의 교육과 제도는 남성을 위한 것이지 여성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남존여비 사상으로 인한 여성의 속박, 여성의 균등한 교육기회 결여 등으로 여성의 사회진출 보장은 거의 전무했고 여성들은 사회의 모든 정보가 차단된 상태에서 가정 내로만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여성에 대한 존중의식, 남녀평등 의식은 기독교, 동학, 개화사상 등에 의해 대중화되기 시작했으나 정작 여성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진보적이고 근대적인 사고 방식을 갖췄던 것은 아니었다. 

전근대 사회 여성형을 근대 사회의 여성형으로 성장시키는데 직접적으로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여성 교육이었는데 그것은 기독교 선교사들의 교육과 의료를 통한 선교 활동을 통해서 또 개화파 관료와 언론기관의 역할로서 가능할 수 있었다. 여성들의 다양한 활동이 어느 정도 가능했던 근대와 달리 전근대시기 찾아 볼 수 있는 인천 여성 인물은 주로 지배층, 즉 왕실이나 사대부계층과 관련돼 있다. 칠대어향(七代御鄕)이라 불렸던 고려시대는 왕실의 외가를 이루는 인주 이씨 왕비들을 통해 짐작할 수 있으며, 조선시대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국난에 처했을 때 효(孝)와 열(烈)의 사례가 지리지 등에 남아 부분적으로 여성의 활동상을 접할 수 있을 뿐이다. 

궁극적으로 인천 여성사 정립을 위해 여성인물 자료가 축적됐을 때 과연 인천 여성인물의 어떤 면을 부각시킬 것인지? 또 어떤 것이 이 시대의 여성상(女性像)인지? 과거처럼 나라의 독립을 위한 것은 아닐지라도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고자 하는 자신의 이념을 좇을 것인가, 어머니로서의 자애로움과 가족에 대한 끊임없는 희생정신인가, 또는 종교에의 귀의인가, 사회 봉사활동인가 하는 부분들도 고민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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