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아이의 눈은 투명한 유리를 통해 밖을 보듯이, 사물을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봅니다. 남의 말을 들은 그대로 믿고, 보이는 그대로 세상과 마주합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세상을 배워가면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른은 그렇질 못합니다. 자신의 기준과 관점이라는 색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하나의 ‘사실’을 두고도 자기의 입장과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실을 왜곡하곤 합니다. 

「주는 것이 많아 행복한 세상」이라는 책에 할아버지와 손자의 대화가 나오는데 참 재미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말했습니다. "어느 남자가 한 여자를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사랑하고 있었단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에게 청혼했지. 그때 여자가 이런 쪽지를 건네는 거야. ‘두 마리 말과 다섯 마리 소를 갖고 오면 결혼하겠어요’라고 말이야." 남자는 여자가 말한 말 두 마리와 소 다섯 마리가 어떤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그것을 모르면 여자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50년이나 흘러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여자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 얘기를 듣던 손자가 피식 웃으며 그 남자를 ‘바보!’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두 마리 말이랑 다섯 마리 소’라는 말은 ‘두말 말고 오소’인데 그 남자는 이것도 모르고 50년이나 보냈어요?" ‘두말 말고 오소’라는 손자의 말에 절로 감탄사가 나옵니다. 여자가 자신에게 청혼하는 남자에게 멋진 은유로 청혼을 허락했지만, 남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해 50년을 허비했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눈은 여자의 말을 ‘있는 그대로’로 들었습니다. 자신의 기준이 아니라 여자의 기준으로 바라봤던 겁니다. 재미있는 이 예화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이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왜곡시키며 살고 있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저자는 ‘어른들은 보이는 그대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 아이들이 그것을 일일이 어른에게 설명해야 한다는 건 힘들고 피곤한 일이야’라는 생텍쥐페리의 말을 전하며 아이와 어른의 차이를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 보고, 자신이 본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어른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혹시 그 말에 다른 뜻은 없을까, 라고 의심한다. 그래서 불신이 생기고 미움과 다툼이 벌어진다." 

어린아이는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호기심을 갖습니다. 그래서 ‘호기심’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젊음’과 ‘늙음’을 구분하기도 합니다. 호기심이 있어야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의 ‘너’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와는 전혀 다른 ‘너’와도 벗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오늘의 우리를 떠올려 봤습니다. 곳곳에서 코로나로 인해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 일자리를 잃고 또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 취업 기회가 바늘구멍임을 알고 주저앉은 사람들, 자영업자들의 하염없는 눈물, 산사태와 물난리의 피해가 너무나도 커서 복구 의지마저 잃고 가슴을 치며 우는 사람들이 눈에 선합니다. 

그리고 요즘 TV 화면을 장식하고 있는 뉴스메이커들의 얼굴들과 이슈들이 연이어 떠오릅니다. 아비규환과도 같은 아픔을 겪는 국민의 아우성과는 전혀 무관한 다툼들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뉴스를 장식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실제 삶의 현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의 바람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괴리가 큽니다. 뉴스메이커들이 아이의 눈으로 삶의 현장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그들이 ‘두말 말고 오소’의 실체를 모른 채 50년을 헛되이 보낸 남자처럼 어리석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