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현린 주필
원현린 주필

지금 나라가 어렵다. 지난 여름 50여 일간 이어진 긴 장마와 폭우로 인해 수해농민들은 살길이 막막하다. 저수지가 무너지고 강둑이 터지면서 논밭이 물에 잠겨 올해 농사를 망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이은 태풍을 맞아 국민들은 기진맥진 탈진 상태다. 그러잖아도 코로나19라는 가공할 바이러스 창궐로 국민 생활이 말이 아니다. 

오늘도 여야 정치권은 서로가 옳다 하며 한 치 양보 없는 정치공방으로 구태(舊態)를 재연하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복무 중 휴가 특혜 의혹을 놓고 진영(陳營) 간 진실 공방이 치열하다. 참과 거짓은 가려져야 한다. 

‘세치 혀’가 급기야는 안중근 의사와 유관순 열사까지 진흙탕 싸움장으로 모셔오는 불경(不敬)을 저지르고 말았다. 말 그대로 설전(舌戰)이다.

말은 한번 입을 통해 나가면 시위 떠난 화살이요, 엎질러진 물이다. 불러도 되돌아 오지 않고, 쓸어 담으려 해도 담을 수가 없다. 

말은 잘하면 때로는 금(金)이 되기도 하지만 화(禍)가 미치기도 한다. 중국의 정치가 풍도(馮道 882∼954년)는 ‘설시(舌詩)’라는 시에서 "입은 곧 재앙의 문이요, 혀는 곧 몸을 자르는 칼이다(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라고 했다. 말을 조심하라는 경세(警世) 문구다. 

법(法)을 잘 안다는 인사들일수록 자신의 행위가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현하지변(懸河之辯)으로 교묘히 법 그물을 빠져 나가곤 한다. 설혹 법망(法網)을 빠져 나간다 해도 도덕적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법은 어디까지나 도덕의 최소한이기 때문이다.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사상가 순자(荀子)는 "세상을 옳게 다스리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을 뿐, 다스리는 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有治人 無治法)"라고 했다. 의미 있는 말로 사료된다.

검찰이 곧 수사 결과를 내놓는다고 한다. 문제는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한쪽 진영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세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다는 의식에서다. 법은 특권층의 신분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法不加於尊)는 고사(故事)도 오늘의 법 불신풍조를 낳는데 한몫을 했다.

정치 사안마다 국회와 내각 가리지 않고 거칠고 험한 말들을 쏟아 낸다.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깜냥이 안되는 인사들이 어울리지 않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잡음이 나고 물의를 일으키는 것이다.  

유행가 가사처럼 "빙글빙글 도는 의자 회전의자에 임자가 따로 있나, 앉으면 주인인데…"가 아니다. 의자에는 반드시 임자가 따로 있다. 

자기 자리인지 아닌지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게다. 의복도 맞는 사람이 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춤을 추자니 어색한 것이다. 

국회가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본분을 망각한 지는 이미 오래다. 정치권은 어제도 오늘도 내세우는 가치가 정의(正義)와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정의와 국민의 무게가 그렇게 가벼운 것은 아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임무를 다할 때 정의는 이뤄지는 것이다. 

여전히 반성 없는 정치권이다. 남북 관계는 풀리지 않아 진전이 없다. 아베 수상이 물러나고 신내각이 들어선 일본과는 새로운 외교관계를 모색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외교에서도 국익을 따지지 않을 수 없는 우리다.

이러한 국가적 난제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치권은 틈만나면 시도때도 없이 철부지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누가 철이 있느니 없느니 하며 밤을 지새는 정치권의 ‘철없는 논쟁’을 국민들은 지켜봐야 했다. 철도 안든 사람들이 어떻게 국정을 이끌어 갈 수 있는가. 국민들의 걱정이 크다.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제1조②항)",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제10조)"라고 명문화하고 있다. 

이러한 국민들이 허탈감에 빠져 있다.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공직자들이다. 국민을 힘들고 어렵게 하는 죄(罪) 크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